[기고] 韓·日, 문화적 간극 좁혀 갈등관리 해야

입력 2019-07-05 17:50  

'약속' 관련 상대방 문화를 존중
과거사와 별개로 협력 증진해야

이수철 < 日 메이조대 경제학부 교수 >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의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불안의 연속이다. 한류 붐으로 인해 안정적인 관계로 들어섰나 싶으면 위안부 문제가 발목을 잡고,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했나 싶으면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한 불행한 과거사에 있다.

복잡한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를 지닌 유럽은 오늘날 공동체를 형성해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은 해방 후 74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호불신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피해자와 가해자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보는 시각의 차가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약속’을 대하는 문화적인 차이도 한몫하지 않나 싶다.

일본은 한국과 같은 유교문화권 국가이고 생김새도 비슷해 겉으로는 문화적 차이가 별로 없는 듯하다. 하지만 생활 깊숙이 들어가면 다른 점이 적지 않음을 느낄 때가 많다. 그중 하나가 약속을 둘러싼 문화적 차이다.

한국에서 약속을 한다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이란 무언의 전제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즉, 약속을 지키기 어려운 돌발적인 상황이라든지, 그 약속보다 더 중요한 다른 사정이 생기면 ‘이번에는 약속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문화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 약속을 한다는 것은 ‘인력으로 통제 불가능한 천재지변이 아닌 한’이란 전제가 깔려있다. 시시한 약속이더라도 선약이 우선이고, 다른 아무리 중요한 사정이 생겨도 약속을 깨는 사람과는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문화다.

강제징용 문제를 보는 시각이 그렇다. 일본은 일단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5억달러를 배상했고, 이로써 모든 청구권을 말소하기로 약속했는데 이를 저버리는 한국과는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은 당시 상황과는 사정이 달라졌으며 그때 피해를 입은 개개인의 상처를 가해자인 일본이 반드시 헤아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약속에 대한 이런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상호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이제는 일본이 경제적 보복 카드까지 꺼내들게 된 것이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하에서 서로 도와야 할 이웃끼리 불신하고 경제전쟁까지 일으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본은 오랜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던 문제를 약속 하나로 없었던 일인 것처럼 할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인권을 침해받은 사람들에게 진정 어린 위로와 사과를 하며 한걸음 한국에 다가서야 한다. 한국은 일본의 약속문화를 이해하고 한·일 협정의 혜택을 받았던 기업들이 솔선해서 배상에 참여함으로써 일본에 한걸음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파트너인 일본과는 과거사와는 별개로 상호 협력하고 돕는 발전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일본의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한·일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지만 이를 비난만 한다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악화시키게 될 것이다. 정치적 문제와는 별개로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 관계가 형성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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