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한일 경제갈등, 기업은 피해자…해법은 정부가 찾아야

입력 2019-07-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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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청와대는 기업인들의 고언 다 들을 준비돼 있나

문재인 대통령과 국내 30대 그룹 총수들의 간담회가 내일 열린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에 대한 양국 간 대화와 타협이 쉽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와중의 행사여서 관심이 크게 간다. (…) 이번 모임이 우리나라가 정경(政經)연합으로 맞대응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정치·사법·외교적 견해차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나 국제사회를 향해서나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협력은 별개”라는, 정경분리 원칙을 주장하고 관철도 해야 할 상황이다. (…)

기왕에 재계 총수들과 만난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쓴소리도 마다않겠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통령은 말문을 닫고 고언 듣기를 자청하는 게 좋겠다. 비상시기에 한·일을 오가며 정신이 없을 기업인들을 대통령이 한꺼번에 만나자고 했으면 진지하게 경청하는 게 해법 찾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내일 회동에서는 우리 경제와 산업의 현안 문제점이 두루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반도체라는 한국 최대 기간산업이 급소를 맞았지만, 크게 봐서 약점 많은 우리 산업의 취약성이 확인됐다고 자성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부품·소재산업 국산화’라는 과제만 해도 언제 적부터 반복된 정책구호였나. 하지만 말뿐이었고 산업 곳곳은 여전히 약점투성이다. 국제적 분업화나 ‘가치 사슬’로 설명 못 할 취약점이 너무 많다.

우리 경제의 기본이 탄탄하고 산업구조가 제대로 경쟁력을 갖췄다면 이렇게까지 위기감이 고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구호에 매몰된 채 말로만 ‘혁신성장’을 외쳤고, 무리한 주 52시간 근로제 등으로 산업 현장을 경직화했으며, 온갖 규제로 기업 경영의 운신 폭을 확 줄여버렸다. 장기간 적폐수사 등 경영 외적의 사회분위기까지 투자와 적극 경영의 길을 가로막아왔다. 일본이 이런 취약고리까지 다 파악했든지 않았든지 간에 체력이 떨어져 침체된 한국의 산업과 경제구조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만만한 상대로 봤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통령은 이런 산업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기업인들의 현장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간 정부의 행보를 보면 웬만해서는 기업인들이 속마음 내놓기를 꺼릴 수 있다. 하지만 듣기 불편한 이야기일수록 더 긴요한 내용일 수 있다. 내일 행사까지 ‘국내용 쇼’가 되면 더 큰 진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다. ‘사드 보복’ 등으로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는 중국발(發) 충격에 대한 대비도 마찬가지다. 경제와 산업의 체질 개선과 구조 개혁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재계의 목소리를 잘 들어 당장 경색된 대일관계를 풀어나가는 한편 웬만한 외부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강한 경제로 가도록 국가 경영의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7월 9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정치권은 기업인들의 현장 애로 들어야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찾는 게 시급
경제적으로 부품·소재 국산화 추진을

미국 현대사에서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로 이어진 공화당 집권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업과 시장의 자율 존중, 작은 정부 지향’ 등의 가치를 담은 ‘레이거노믹스’(레이건 경제정책)를 기반으로 강한 미국의 틀을 다시 다진 시기였다. 양당 체제의 미국 현대정치에서 공화 민주 어느 한쪽에서 이때처럼 12년간 집권한 때가 없었다. 미국의 대외 영향력도 커지면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도 넓어졌다. 무엇보다 미국과 소련이 경쟁한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이 완승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 체제 경쟁에서 미국의 승리는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멸망을 의미했다. 옛 소련은 지금의 러시아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다. 영토 구성, 국가 체제, 국기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조선’과 ‘대한민국’의 차이만큼으로 비교할 수도 있겠다.

그런 공화당의 공고했던 집권을 끝낸 사람이 약관의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이었다. 클린턴이 선거에서 내세운 유명한 구호는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이 말로 무명의 클린턴은 1992년 선거에서 이겼다. 예나 지금이나, 어디서나 경제 문제는 그만큼 중요하다. 1980년대 폴란드 민주화의 기수로 나섰던, 노조위원장 출신에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레흐 바웬사가 단임 대통령에 그쳤던 것도 주로 경제난 때문이었다. ‘국민 스타’ 바웬사의 퇴임 때 지지율은 0.6%였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실패로 끝난 이후 경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유권자들의 제1 관심사는 어디서나 먹고사는 문제인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청와대와 여당에 비상이 걸린 것도 그런 요인이 클 것이다. 국회의원 총선이나 대선에서 지면 어떤 정치적·이념적 지향점도 자리 잡을 공간이 없어진다. 그런 운명을 경제가 좌우하는 시대다. 청와대 요직 참모들과 경제부총리, 여당의 지도부가 재계의 리더들을 연거푸 만난 데 이어 대통령까지 회동을 요청한 배경이다. 그간 대기업들을 개혁 대상으로 여겨왔지만, 바뀐 듯한 태도를 보면 그만큼 위기 상황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본의 한국 최대 기간산업인 반도체 부품 공격은 그만큼 뼈아픈 것이었다. 그렇다면 청와대든 정부든 여당이든 기업인들의 현장 애로와 원하는 바를 들어야 한다는 논평이다. 이런 회동이 자칫 ‘정경 유착’으로 비쳐지는 것은 위험하다는 메시지도 담았다. 한국은 어디까지 정경분리 대응을 해야 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힘겨운 싸움, 해법도 어렵다. 하지만 근본 문제를 풀어가는 식이어야 당장의 현안도 풀리고 장래의 더 큰 위기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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