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분쟁에 이어 남중국해 등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미·중 간 전략적 경쟁도 심화되는 양상이다. 군사안보 분야는 우발적 충돌에 의해서도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위험성이 높아 우려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국’이자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수정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공세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에 대해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섀너핸 장관 대행의 샹그릴라 대화 참석에 맞춰 발표된 미 국방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는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中 '영해화' vs 美 '항행의 자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이 포기한 지역의 귀속을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그 씨앗이 마련됐다. 이 지역에 다량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1970년대 유엔해양법협약(UNCLOS) 논의가 진행되면서 중국 및 동남아 관련국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영유권 확보를 위한 무력충돌도 발생했다. 1974년 중국과 베트남이 파라셀 군도(시사군도)에서 충돌해 양국이 분할 지배하던 군도 전체를 중국이 점령하게 됐다. 양국은 1988년 스프래틀리 군도(난사군도)에서 또다시 충돌했는데 중국의 승리로 끝났다. 중국과 필리핀 간에도 1992년 스프래틀리 군도의 미스치프 암초를 둘러싸고 충돌이 일어났고, 2002년에는 필리핀이 영유권을 주장하던 스카버러 환초(황옌다오)를 중국이 무력 점령했다. 11개의 섬과 105개의 암초로 구성된 스프래틀리 군도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대만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이다.
남중국해 문제가 부각된 것은 2000년대 이후 중국이 해양강국 건설을 강조하면서부터다. 특히 2013년 이후 중국은 파라셀 군도와 스프래틀리 군도의 암초를 매립해 7개의 인공섬을 건설하고 이곳에 활주로와 병력이 주둔할 수 있는 기지를 건설했다. 2016년 말에는 사상 처음으로 랴오닝 항모 전단을 남중국해에 파견했고, 지난해 4월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남중국해 해상에서 48척의 해군 함정과 76기의 군용기의 해상 사열을 했다. 또 인공섬에 최신예 미사일을 배치하고 군용 전파교란 시설도 설치하면서 군사적 긴장감이 더 높아졌다.
아세안은 2002년 중국과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DOC)’을 채택하고 2012년부터는 구속력이 있는 ‘남중국해 행동규범(COC)’ 채택을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세안 내에도 분쟁 당사국과 비당사국 간 입장 차이가 커 중국과의 협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화 움직임을 미국의 제해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남중국해에서의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 및 비군사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2015년 이후 ‘항행의 자유 작전(FONOP)’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는 중국 인공섬 12해리 안으로 항행함으로써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에는 핵항모 로널드 레이건 전단과 일본 경항모 이즈모 전단이 남중국해에서 연합훈련을 하는 등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와의 공동작전도 강화하고 있다.
아세안의 대처 방향 주목해야
최근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 한·미 정상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 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할 것을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반(反)화웨이 공조와 남중국해 항행 자유 작전 협력을 요청받을 경우 어떤 입장과 행동을 취할지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남중국해는 한국 수출 물동량의 30%, 수입 에너지의 90%가 통과하는 곳이니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국은 미·중 양자택일이라는 냉전적·이분법적인 사고에 빠지지 말고 보다 분명한 원칙을 세워 국익을 보호해야 한다. 아세안 10개국이 미·중 사이에서 회원국 내 이견을 극복하고 인도·태평양 협력에 대한 아세안의 원칙·구상 및 협력 분야를 주도적으로 밝힌 것은 한국에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세안과의 협력을 추구하는 신남방정책의 전략적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되는 시점이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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