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비틀거리는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입력 2019-07-18 17:34  

제한된 차량공유 '타다'마저
택시업으로 전락시킨 한국

4차 산업혁명은 제도혁명
혁신과 기득권 갈등 조정하고
소비자 후생 늘리는 쪽으로
규제를 혁파해야

이민화 <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이 종언을 고한 느낌이다. 19세기 말 근대화된 세계에 빗장을 걸어잠근 우리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 같다. ‘타다’와 같은 공유경제 모델이 더 이상 한국에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4차 산업혁명의 ‘갈라파고스’가 돼가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의 분별력이 유일한 돌파구다.

공유경제는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공유를 통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혁신을 촉발해 사회적 가치 창출과 가치 분배를 선순환시키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다. 과거 오프라인 중심 1, 2차 산업혁명의 소유경제에서 공유지는 비극이었다.

그러나 3차 산업혁명이 만든 온라인 세계에서 공유지는 희극이 되면서 공유경제가 부상했다. 온라인 공유경제 규모는 세계 경제의 5%에 불과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융합한 O2O 경제의 급속한 확대로 2030년이면 공유경제가 세계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유경제가 경제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 같은 공유경제를 부정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개인정보 규제와 클라우드 활용 규제 측면에서 한국은 세계 최악이다. 그 결과 세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을 포함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70%는 한국에서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불법’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구태언 변호사의 연구 결과다.

그나마 규제를 우회해 사업화에 성공한 ‘타다’라는,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정말로 제한된 차량공유 서비스마저 단순한 택시업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기존 사업자의 지대(地代) 추구에 정치권이 동조하는 환경에서 혁신의 씨앗이 자랄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데이터와 클라우드 진입을 규제하고, 기존 산업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신규 산업에 대한 진입을 규제하면 남는 것은 과거의 잔재뿐이다.

국가는 산업의 ‘창조적 파괴’를 통해 발전해왔다는 것이 대런 애쓰모글루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를 비롯한 숱한 학자들의 역사적 연구 결론이다. 산업의 창조적 파괴를 포용하는 국가는 발전하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몰락한다는 것이 지난 250년 산업혁명의 역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기존 산업의 낡은 이권, 즉 지대를 보호하기 위해 신규 산업을 가로막는 국가에 미래는 없다.

소유의 현실과 공유의 가상이 충돌하는 4차 산업혁명에서는 기술 융합보다 ‘욕망 융합’이 더 어렵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4차 산업혁명을 기술 융합으로 오해하고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을 투입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중요한 욕망의 융합을 위한 규제 개혁에는 단돈 100억원도 들이지 않은 채 그럴듯한 정치적 수사만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 혁명이라기보다 ‘제도 혁명’이다.

신규 산업과 기존 산업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량이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의 역량이다. 이미 주요 국가에서 천명된 원칙은 ‘국가는 신규 산업과 기존 산업 중 어느 편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소비자의 손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부분 소비자는 차량공유와 원격의료를 원하고 있지만 국가의 공유경제 정책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택시 사업자와 의료 사업자들의 표가 소비자 전체보다 중요하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 아닐까.

소비자 후생이 곧 국가의 이익이다. 산업 혁신으로 얻은 국가 이익의 일부를 기존 산업의 구조조정에 투입하는 것이 국가가 수행해야 하는 갈등 조정 역할이다. 그런데 타다에 택시기사를 의무화시키는 규제는 기존 산업의 이권은 지켜주고 소비자는 사실상 희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공유경제는 차량에 그치지 않는다. 공유숙박, 공유주거, 공유주방, 공유인력 등으로 무한히 확산된다. 공유를 통해 효율과 혁신이 꽃핀다. 공유에 따른 부작용 때문에 공유를 저지하는 것이 바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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