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재팬 보이콧' 을 대하는 복잡한 심경

입력 2019-07-24 17:55  

유니클로 매장 한국인 직원 5000명
불매운동 확산·매출 반토막에 전전긍긍

류시훈 생활경제부 차장



[ 류시훈 기자 ] 한국에서 유니클로 매장을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 일본의 패스트리테일링과 롯데 계열사들이 지분의 51%와 49%를 나눠 갖고 있다. 2005년 한국에 진출해 현재 187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임직원 5300여 명 중 약 5000명이 매장에서 일한다. 대부분 20~30대다.

이 젊은이들이 요즘 속을 태우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이후 시작된 불매운동 영향으로 하루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본사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지난 11일 발언이 화근이었다. 한국 내 불매운동에 대한 질문에 “장기적으로 매출에 영향을 줄 만큼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게 한국 소비자를 자극했다. 쇼핑객으로 북적이던 매장은 주말에도 썰렁하기만 하다. 배우진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이 젊은 직원들을 다독이고 있지만 “이러다 일자리를 잃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노골적인 경제보복이 시작되면서 국내에서 ‘재팬 보이콧’이 확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겨냥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우리 국민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이웃나라의 미래’를 타격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보복. 그들이 숨겨온 칼날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각자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때론 소극적으로, 때론 적극적으로….

편의점에선 일본 맥주로 가던 손길을 거둬들이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일본 맥주 매출은 지난 6월에 비해 20% 이상 줄었다. 아사히는 수년째 이어온 판매 1위 자리를 내줬다. 다음은 여행. 한국인은 관광 대국 일본의 ‘큰 손님’이다. 일본 정부관광국(JNTO)이 내놓은 ‘방일 외국인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53만 명에 달했다. 2011년(165만 명)에 비해 4.5배로 늘었다. 과거사에 대한 아베 신조 내각의 잇따른 도발적 발언과 우경화에도 방일 관광객은 오히려 급증했다.

이번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일본 대신 다른 나라로 해외여행지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예약한 일정을 취소하기도 한다.

하나투어의 경우 하루 평균 1000건이 넘었던 일본 여행 예약건수가 500건 안팎으로 줄었다. 모두투어의 신규 예약건수도 급감했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한 지인은 “딸과 둘이 홋카이도로 여행 가기로 약속한 터라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아이가 먼저 ‘아빠 나중에 가자’는 말을 꺼내더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그동안 중장년층의 관심사로 여겨졌다. 한국의 K팝에 열광하고, 일본의 중소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양국 젊은이들은 정부 간 갈등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2019년 여름. 적어도 한국 젊은이들은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 재팬 보이콧 기류는 젊은 층에서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유니클로에서 ‘에어리즘’을 사더라도, 시원한 홋카이도로 여행을 가더라도 그 선택을 존중한다.

이런 것도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지금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영향을 주고받는 초연결사회다. 우리의 행동은 의도된 결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불매운동에 마음 졸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 노선 비중이 큰 저비용항공사(LCC) 직원들도 그렇다. 유니클로 매장 직원 5000여 명은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정치·외교적 문제로 경제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을 고통받게 하는 정부는 어느 나라이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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