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대체거래소 설립, 서두를 일 아니다

입력 2019-07-24 18:06  

증권사 6곳, 대체거래소 추진
한국거래소 입지 흔들 위험 커
자본시장 기반 다지는 게 우선

강병중 < 넥센그룹 회장·前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



국내 대형 증권사 여섯 곳이 대체거래소(ATS: Alternative Trading System)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60여 년간 한국거래소가 독점해온 주식 거래시장을 경쟁체제로 바꿔 자본시장에 혁신을 가져오겠다는 게 명분이다. 수수료 인하와 투자지수의 다양화, 거래시간 확대 등으로 새로운 투자기회를 만들고 외국인 투자도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자본금 1000억원을 출자해 법인을 세우고, 이르면 올 12월 금융위원회에 설립인가안을 제출해 내년 상반기에 새 증권거래소의 문을 연다는 계획이다. 상장 기능, 시장 감시기능은 없어도 전자거래 시스템을 기반으로 매매체결은 가능한 시스템이다.

대체거래소는 증권사 연합체가 전자거래 시스템을 기반으로 설립한 매매체결 시스템이다.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도입한 수단 중 하나다. 2013년 자본시장법이 개정된 이후 설립이 가능해졌다. 이후 금융투자업계에서 지속적으로 대체거래소 설립이 논의됐지만, 플랫폼 개발 규모 및 기간 등 구체적 설립 여건의 미비로 난항을 겪어왔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다양성은 보장해야 하며, 경쟁은 발전을 촉진하는 덕목이다. 하지만 한국 자본시장이 아직 열악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시기상조라고 판단된다. 시장 규모가 협소하고 거래수요가 제한된 상황에서 소모적 경쟁만 불러오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미국 84개, 유럽 153개, 일본 2개 등 해외에도 대체거래소는 있다. 그러나 미국은 2016년 8월 84개에서 올 5월 54개로 감소했고,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된 정식 증권거래소는 23개에 불과하다. 세계거래소연맹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지난 5월 월간 거래대금 기준으로 뉴욕증권거래소 997조원, 나스닥 4228조원, 배츠 글로벌 마켓(BATS) 1432조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한국거래소는 같은 기간 미국의 3개 시장 거래대금을 합한 금액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99조원을 거래했을 뿐이다. 한국거래소 당기순이익이 최대 40%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체거래소가 시장점유율 30%를 넘으면 ‘제2 거래소’가 설립될 수도 있다. 지난해 나스닥 등 외국 증권거래소들이 제2 거래소 설립을 시도했던 움직임으로 미뤄볼 때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해외거래소에 넘겨줄 위험천만한 일이다.

우리 자본시장은 외국인투자자가 40% 이상 참여해 기관과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이익을 얻어가는 곳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은 대량매매를 할 때 투자전략이 노출되고 시장충격이 발생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런데 대체거래소를 통해 ‘다크풀(dark pool) 거래’를 하면 이득을 보게 되며, 상대적으로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 한마디로 한국거래소가 공익을 추구한다면 대체거래소는 사익을 도모하므로 대체거래소 설립으로 인한 부작용 발생 위험이 커지지 않겠는가. 한국거래소는 규제로 묶어두고 대체거래소에는 자율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한국거래소 본사가 있는 부산으로선 대체거래소 설립 움직임을 용납하기 어렵다. 필자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이었을 때 부산시민과 함께 힘들게 부산에 유치한 선물거래소가 증권거래소와 통합돼 한국거래소 본사가 부산에 자리 잡았다. 부산이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지 10년이 됐고 부산국제금융센터도 세워졌지만 외국계 금융회사 하나 없는 허울뿐인 상태다. 한국거래소의 주요 기능은 서울에서 이뤄지는데, 서울에 본사가 자리 잡을 게 확실한 대체거래소 설립 소식마저 들려오니 안타깝다.

한국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만으로는 지탱할 수 없다. 지방도 살아야 한다. 지방에도 활력을 불어넣어야 청년들이 남고 아기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한국 국가대표다. 한국거래소를 더욱 육성해 자본시장 규모가 한층 커진 이후에 대체거래소 설립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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