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용예산 4兆의 30% 심의
예산심의 사실상 '옥상옥' 구조
[ 박진우 기자 ] 1조원에 달하는 서울시 예산을 시민이 직접 심의하는 서울민주주의위원회가 25일 출범한다. 가용 예산의 3분의 1을 시민이 심의해 시정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 안팎에서는 시의회를 두고 예산을 따로 심의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과 함께, 위원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대표성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시민이 참여하는 숙의예산이 자칫 이익단체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체 가용 예산의 3분의 1 심의권 가진다
서울시는 시민·의회·행정 합의제 행정기관인 서울민주주의위원회가 이날부터 업무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위원장(상임위원)과 당연직 공무원 세 명, 시의회 추천인 세 명, 구청장협의회 추천인 두 명, 시민위원 여섯 명으로 구성된다. 이달 말 위원장을 공개 모집하고, 면접을 거쳐 9월에 임용할 예정이다. 위원 임기는 2년으로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월 1회 정기회의를 열고, 필요하면 임시회도 열 수 있다.
위원회 산하에는 주무부서인 서울민주주의담당관과 예산부서인 시민숙의예산담당관, 시민 참여를 유도하는 서울협치담당관과 지역공동체담당관 등 시장 직속 네 개 과가 소속된다.
서울민주주의위원회는 시민들이 예산 심의에 참여하는 시민숙의예산제를 통해 예산을 배정한다. 서울시는 2021년 6000억원, 2022년 1조2000억원에 달하는 사업을 시민 숙의 대상 사업으로 배정할 계획이다. 올해 서울시 예산에서 법정의무부담금을 제외한 가용 재원 3조9137억원의 30%에 달하는 금액이다. 서울민주주의위원회에 소속된 15명의 위원은 시민숙의예산제를 적용할 사업 분야를 결정한다.
시의회와 ‘옥상옥’
서울민주주의위원회의 권한이 커지다 보니 기존 조직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시의회의 불만이 크다. 서울시민이 삼권분립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편성한 예산을 심의하는 권한을 위임한 조직이 서울시의회다. 예산안의 최종 심의권은 여전히 시의회가 갖지만, 시민들이 먼저 숙의한 사업을 시의원이 삭감하기 쉽지 않다. 시의회 역할을 하는 조직을 또 구성한 이유가 뭐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 내부에서도 업무 비효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예산 심의를 두 번 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전문지식 및 자료가 없는 시민들이 일일이 시민숙의예산제를 거칠 사업을 고르기도 어렵고, 사업을 고르더라도 예산 심의를 할 만큼 해당 사업을 검토할 여유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공무원은 “참여하는 시민위원들도 아직 숙의가 뭔지 개념도 잡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숙의가 진행되는 동안 수차례 자료 제출과 설명을 반복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위원회에 참여할 시민위원 여섯 명의 대표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시는 아직 시민위원 위촉 방식을 정하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이 직접 선정하는 방식과 공모를 통해 무작위로 선택하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시의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행정기구 설치 조례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시민위원 여섯 명은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으로 규정돼 있다. 과거 시민참여예산제에 참여했던 한 공무원은 “시민위원들이 이해관계가 있는 사업을 시민숙의예산제 사업으로 선정하려 할 경우 예산 배정이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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