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트럼프 일방주의가 초래한 美 외교정책의 퇴보

입력 2019-07-25 17:32   수정 2019-07-26 01:21

외교의 몰락

로난 패로우 지음 / 박홍경 옮김
북플러스 / 448쪽 / 1만9800원



[ 은정진 기자 ] 미국 고위급 외교관 토머스 컨트리맨은 2017년 요르단 암만에서 근무하던 중 해고 통보를 받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사진)이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닷새 만이었다. 그는 미 국무부에서 이란 핵협상을 담당하고 세기말적 위협을 벌이던 북한 정권에 대응하는 업무를 해왔다.

컨트리맨은 트럼프 인수위원회와의 첫 회의에서 ‘경고음’을 들었다. 그 경고음은 트럼프가 대선 캠페인 당시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였다, 그러더니 해고가 시작됐다. 트럼프 인수위는 후임자가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과거 정치적으로 임명된 모든 대사에게 즉시 짐을 싸라고 통보했다. 또 국무부에서 일하는 모든 ‘비직업 외교관’ 명단을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이들은 한반도 문제, 파키스탄 분쟁 등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였다. 컨트리맨은 요르단에 가기 전 이들의 해고를 막고자 로비를 벌였다. 돌아온 건 자신의 해임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컨트리맨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에게 별 권한 없이 다자간 외교 문제를 다루는 임무를 맡겼다.

저명한 탐사보도 기자로 공공부문 퓰리처상을 받은 로난 패로우는 신간 《외교의 몰락》에서 “컨트리맨의 해임은 트럼프 일방주의에 의한 외교 대참사의 서막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트럼프가 정권을 잡은 후 외교분야 전문지식을 가지고 정부에서 일한 이들이 대거 해고되면서 미국 외교정책은 급격히 퇴보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국무부 특사인 리처드 홀브룩을 비롯해 미국의 경륜있는 외교관들과 함께 일했던 경험과 헨리 키신저, 힐러리 클린턴, 렉스 틸러슨 등 역대 미국 국무부 장관과 정책 입안자, 내부고발자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오늘날 미국에 필요한 국정 운영기술에 관해 논한다. 그는 1995년 보스니아에서 데이턴 평화협정을 맺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외교 노력을 기울였던 홀브룩을 집중 조명했다.

하지만 데이턴 협정 체결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올랐던 홀브룩 역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역대 정부의 정치적 비굴함과 근시안적 사고로 총구 아래 놓인 미국 외교 현장 속에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외교관들 모습은 읽는 내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그러나 일부 미국 외교관의 시각에서만 트럼프 외교 정책을 바라본다. ‘재선을 위한 정치 쇼’라는 비판도 받지만 트럼프 정부가 가장 큰 미국 국가 안보 이슈인 북한 문제를 역대 어느 미국 정부보다 획기적으로 진전시켜 놓은 점은 애써 외면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저자는 현 트럼프 정부뿐 아니라 9·11 테러 이후 외교를 군사화한 부시 정부, 어느 정부보다 군 장성들을 고위직에 많이 배치하고 외국에 많은 무기를 판매한 ‘국방·외교 불균형 정부’ 오바마 정부를 싸잡아 비판한다. 그는 “전통적 외교를 구사하는 옛 제도가 오늘날 위기를 해결할 수 없기에 낡은 외교제도를 현대적인 제도로 갈음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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