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평 찜통주택'서 허덕…"적은 보상, 더딘 복구에 살길 막막"

입력 2019-07-26 17:17   수정 2019-07-27 02:15

탐사 리포트

강원 산불 100일…이재민들 고통은 현재진행형

장맛비 줄줄 새는 임시주택
생업 잃은 소상공인들 기 막혀
보상 놓고 이재민끼리 갈등도



[ 배태웅 기자 ]
“봄에는 산불로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이제는 창문 틈새로 빗물이 스며들어와서 난리네요. 앞으로 이곳에서 어떻게 2년을 버틸지 막막합니다.”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에 살고 있는 윤명숙 씨(77)는 창문쪽 벽지를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씨는 지난 4월 강원 속초·고성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하루아침에 집과 삶의 터전을 모두 잃어버린 이재민이다. 지난 6월부터 정부가 마련해 준 ‘조립식’ 임시주택(24㎡, 7.26평)에서 남편, 여동생과 거주하고 있다. 성인 세 명이 같이 살기엔 비좁은 데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빗물이 집안으로 들이닥쳐 올여름을 나기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11일로 강원도 산불이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다. 1500여 명의 이재민을 남긴 화마의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더욱 깊어졌다. 아직까지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거주하던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아직 없다. 윤씨처럼 조립식 임시주택에서 올해를 보내야 하는 이재민은 641명이나 된다. 첫 피난처였던 고성연수원과 서울시수련원에 그대로 남아 있는 이재민도 39명이다. 436명은 친척이나 지인집에 얹혀살고 있고, 402명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제공한 임대주택에 일단 둥지를 틀었다.

7.26평짜리 임시주택에 거주

장천마을 이재민 박만호 씨(72)도 가족들과 두 개의 임시주택에 나눠 살고 있다. 아들 부부 및 고등학생 손자 둘과 함께 살기엔 임시주택이 너무 좁다. 옷장과 식탁 등 살림살이를 놓으면 성인 한 명이 누울 공간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다. 박씨는 “식사를 할 때 다같이 모여 먹기도 힘들다”며 “집을 새로 지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데 언제까지 불편함을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폭염도 문제다. 조립식 임시주택이다 보니 단열기능도 거의 없다. 이재민들은 창문을 닫는 순간 ‘찜통’으로 변한다고 토로했다. 기자가 찾아간 장천마을에는 18동의 임시주택 대부분 사람이 없는 데도 창문이 활짝 열려 있거나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나마 올여름은 정부가 6개월간 전기요금을 대신 내줘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원이 끝나는 내년 여름에는 에어컨을 켜고 나갈 수도 없다. 박씨는 “여름은 물론 올겨울 추위는 또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고 전했다. 임시주택에 사는 이재민 이세환 씨(76)는 “화학약품 냄새로 머리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일부 마감재 때문에 ‘새집증후군’ 같은 증세를 겪고 있다. 이씨의 임시주택 바로 옆은 도로변이라 소음공해까지 겪어야 했다.

장마와 태풍은 이재민들을 더욱 불안에 떨게 했다. 산불로 나무가 타버려 산사태가 날 위험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폭우로 인한 누수 및 침수 걱정도 해야 한다. 속초·고성 산불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삼림피해가 복구되지 않아 산사태가 날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했다.

이재민들은 임시주택에서 2년간 무료로 거주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뒤다. 정부로부터 받은 주택복구비 3000만원으로는 전셋집도 구하기 어렵다. 다행히 지난 23일 국민성금이 2차로 집행돼 최대 4500만원까지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중소상공인 생계 막막”

소상공인, 숙박업자 이재민들은 더 막막하다. 주택 파손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보상 근거가 있지만 소상공인들은 융자지원과 국민성금 외에는 지원을 받지 못한다.

고성군 토성면에서 펜션을 운영한 이재성 씨(62)는 펜션과 집을 비롯해 11채가 모두 불타버렸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졌다. 7년 전 펜션을 매입할 당시 대출이 아직 남아있는 데다 추가 대출을 받기도 어렵다. 불타고 남은 잔해도 치우지 못하고 방치해두고 있다. 피해보상을 청구하려면 피해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정부 지원이 불합리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주택복구비 3000만원과 국민성금 및 주거보조비 등 6300만원을 받았지만 부모, 형제들이 살던 집은 주소지 등록이 안돼 있다는 이유로 보상받지 못했다.

또 다른 이재민 최준영 씨(37)도 이씨와 마찬가지였다. 운영하던 펜션 10여 채가 모두 불타 수십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최씨가 받은 지원금은 아버지와 자신 명의로 받은 주택복구비와 국민성금 1억2600만원이 전부였다. 최씨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는데 보상은 오히려 더 적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재민끼리도 보상방안 놓고 갈등

강원 산불로 인해 마련된 이재민 비상대책위원회는 ‘고성 한전발화 산불피해 이재민 비대위’와 ‘속초·고성 산불 피해자 비대위’ 두 개로 꾸려졌다. 한국전력에 대한 피해보상 책임을 놓고 두 비대위가 서로 충돌하면서 이재민 간 갈등도 지속되고 있다.

고성 비대위는 지난 5월 한전과 산불피해 보상과 관련한 피해조사와 피해액 산정을 한국손해사정사회에 의뢰하기로 협의했다. 반면 속초 비대위는 한전에서 제시한 한국손해사정사회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해액 산정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고성 비대위의 경우 현장조사는 끝나고 손해사정결과서를 작성하는 단계”라며 “속초 비대위는 여전히 협약을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장일기 속초 비대위원장은 “우리가 집회·시위를 주도하며 정부로부터 추가지원을 이끌어냈는데 참가도 안 한 고성 비대위 관계자들이 혜택을 같이 받고 있다”며 “경찰이 한전 수사 결과를 내놓을 때까지 버틸 것”이라고 전했다.

속초=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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