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편향 정책 쏟아내는 정부
'촛불'이 횃불 아닌
풍전등화 신세 되고 있다
'촛불의 명령'을 왜 거스르는지
따져 물어야 할 때다
황영기 < 법무법인 세종 고문·前 금융투자협회장 >
2016년 겨울, 찬바람 부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그 많은 시민이 언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들었던 촛불은 엄청난 힘이 돼 결국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렸다. 새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새삼 ‘촛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수많은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능력에 절망했고, 밀실에서 이뤄진 국정농단에 분노했으며,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라의 품격을 부끄러워했다. 새로운 정치를 원했고, 그 뜨거운 열망은 10년 보수의 아성을 초토화시켰다. 탄핵, 대선, 문재인 정부의 출범 그리고 지난 2년여의 국정운영이라는 일련의 정치적 격동과 파란을 촉발시킨 ‘촛불’은 과연 바라던 것을 얻었는가.
나라다운 나라,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 유능한 정부, 일하는 국회, 엄정한 사법질서, 활기찬 경제, 이런 것들이 ‘촛불’의 바람이었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한쪽 극단에서는 미군 철수, 재벌 타파 등 구호가 나왔으나 이것이 ‘촛불’의 주된 동력이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다시 말해 ‘촛불’이 원했던 것은 체제 전복이나 급진적 남북한 통일 같은 정치적 활극이 아니라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운영됐던 국정을 바르게 돌려놓음으로써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촛불’은 나라다운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국민의 염원을 담은 횃불이었고, 지금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촛불’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의 최근 행태로 인해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촛불’이 바라던 품격있는 정치, 활기찬 경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힘쓰기는커녕, ‘촛불’을 그들만의 정치적 이념 실현의 도구로 삼아 많은 국민을 불안케 하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포퓰리즘으로 재정을 거덜내고,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고, 핵 문제 해결 없이 북한과 손잡는 정책을 촛불이 원했던 것인가?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근로제와 최저임금제, 무소불위의 노동권력 등을 촛불이 지지하는 것인가? 그 추웠던 겨울에 촛불을 들었던 사람 중 도대체 몇 명이나 작금의 좌파적 이념 실현에 동의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953년 7월 27일 유엔군, 북한군, 중공군 사이에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맺어진 이후 남한과 북한은 각각 다른 정치 체제하에서 66년간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 결과 남한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됐고, 북한은 핵을 보유한 세계 최빈국이 됐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란 저서에서 대런 애쓰모글루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지리적, 인종적, 역사적 요인에 의해 국가 흥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포용적 정치·경제 체제’의 선택 여부가 한 국가의 명운을 결정한다고 갈파했다. 남북한의 사례가 인용됐음은 물론이다. 그리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포퓰리즘과 사회주의 경제정책의 실패 사례 또한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런데도 감성적 민족주의를 앞세우고 철 지난 사회주의식 개혁을 전방위적으로 밀어붙이는 지금의 정부는 그 정당성을 ‘촛불’에서 찾고 있으니 ‘촛불’의 운명이 횃불이 아니라 풍전등화가 돼가고 있다.
이것이 과연 ‘촛불’이 바라던 것인가. 만일 ‘촛불’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주적 방법으로 정치선진화를 이뤄낸 명예로운 혁명의 위상을 가지려면 역사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판명난 사회주의식 개혁의 불쏘시개로 촛불이 이용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촛불’의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파괴를 저지해야 한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 투명하게 사용하라는 ‘촛불’의 명령이 왜 전혀 집행되고 있지 않은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탄생의 기원이 ‘촛불’에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의 탈선과 전횡을 막아야 하는 책임 또한 ‘촛불’에 있다. 만약 친북 운동권과 민주노총, 좌편향 시민단체들이 ‘촛불’을 그들의 성채에 감금했다면 ‘촛불’은 그 성채를 부수고 나와 국민 앞에 그 본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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