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 마지막 핀처리처럼
디테일 공들이는 '디렉터 김'
[ 구민기 기자 ] 1세대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체) DSD삼호의 김언식 회장은 지난 30년간 아파트 4만여 가구를 공급했다.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개발 사업 외길을 걸으면서 웬만한 신도시 규모의 주택을 쏟아냈다. 메이저 디벨로퍼 중 경력이 30년에 달하는 이는 그가 유일하다. 그보다 많은 주택을 공급한 디벨로퍼도 찾아보기 어렵다. 김 회장은 “새 단지를 완성했을 때의 짜릿함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일을 즐기는 것, 고객에게 분양가 이상의 가치를 돌려주는 것 두 가지가 장수 비결”이라고 말했다.
공공택지 사업 거부
김 회장의 가장 큰 특징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이 조성한 공공택지·신도시에서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 부지를 매입해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다. 대부분 디벨로퍼가 공공택지에서 사업을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개발 사업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땅 매입부터 입주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게 보통이다. 20년 가까이 걸린 사업장도 있다. 경기 김포시 풍무에서 공급한 풍무 자이는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사업을 진행했다. 경기 광주시 ‘힐스테이트 태전’은 부지 매입에서 입주까지 17년 걸렸다.
미니 신도시 조성 방식은 상대적으로 돈을 벌기가 어렵다. 공기업과 달리 수용을 못하는 까닭에 대지조성비가 많이 든다. 위험도 크다. 사업 기간이 길어 부동산 경기 침체, 경제 위기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는 공공택지를 쳐다보지 않는다. 김 회장은 “공기업이 조성해준 땅에 정해진 대로 집을 짓는 사람들을 디벨로퍼라고 부르기 어렵다”며 “원하는 지역에서 원하는 단지를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그가 공급한 단지가 경기 고양시 일산자이 1차 4683가구, 용인시 동천자이 1차 1437가구, 동천자이 2차 1057가구, 일산자이 2차 802가구, 일산자이 3차 1333가구 등이다.
“상가 분양 절대 안 해”
김 회장은 상가 개발을 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손대는 타 디벨로퍼와의 또 다른 차이점이다. 그는 1990년 경기 수원시에서 상가를 분양한 적이 있다. 분양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상가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분양받은 상가 주인들은 장기 공실에 시달렸다. 김 회장은 2013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이들 상가를 모두 사들였다. 그는 “내게 분양받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볼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고객에게 가치를 돌려주지 못하는 상품은 절대 공급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상가는 리스크가 너무 큰 상품”이라며 “개발업체와 계약자가 ‘윈윈’하는 게 아니라 개발업체만 이익을 보는 대표적인 상품이 상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파트 단지 개발에서도 가치 환원을 신조로 삼고 있다. 그가 그동안 공급한 단지 중 가치 환원을 못 해준 유일한 단지는 일산자이 위시티1차다. 대세 상승세가 마무리되던 2000년대 말 수요가 부족한 중대형을 대거 공급한 것이 패착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이 단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백억원을 더 들여 국내 최고란 평가를 듣는 조경을 했다. 준공 후 5년 동안 입주민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김 회장은 “DSD삼호가 공급한 아파트가 고객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아파트 단지 조경에 유난히 신경을 많이 쓰는 디벨로퍼로 유명하다. 조경에 큰돈을 투입한다. 일산자이 위시티1차의 녹지율은 47%에 달한다. 이 단지에 들어간 조경비용만 600억원이다. 이 중 250억원을 소나무 2500그루를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김 회장은 소나무를 고를 때 가야산을 직접 오가며 정성을 쏟았다. 조경 디자인은 외주업체에 맡기지 않는다. 회사 내부에 조경 디자이너가 별도로 있다. 전체 단지와 조경이 잘 조화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조경은 입주민의 웰빙을 위한 그만의 장치다. 바쁜 현대인에겐 산과 들을 찾을 시간이 거의 없다.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조경을 잘해놓으면 멀리 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자연을 누릴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김 회장은 “삭막한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며 “공들여 나무를 심어놓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숲이 우거지면서 주민 만족도가 계속 올라간다”고 말했다.
스트라이크보다 스페어
그는 그동안 경기 고양 용인 광주 등 수도권에서 주로 사업을 해왔다. 대부분 30분 안에 서울로 출퇴근할 수 있는 지역이다. 서울에 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체 주거지 조성에 공을 들였다.
앞으로는 대도시 도심재생 시장에 적극 진출할 예정이다. 이미 서울 용산구와 성북구에서 도심재생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그는 “일본에서 보듯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10~20년 뒤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앞으로 도심에서 다양한 사업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서울 집값 안정화를 위해서도 3기 신도시 개발 대신 도심 내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베드타운 신도시들이 일본처럼 공동화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신도시를 더 건설할 게 아니라 도심을 고밀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건축·재개발이 본격화되는 지금이 도심 공급을 늘릴 마지막 기회”라며 “용적률을 대폭 높여주는 대신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을 대거 건설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겐 이색적인 이력이 있다. 프로볼링 선수 출신이라는 것이다. 선수활동을 한 시기가 삼호건설 대표로 재임한 기간과 겹친다. 그는 1995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변용환 선수, 국가대표를 지낸 유천희 선수 등과 나란히 한국프로볼링 1기 선수로 선발됐다. 그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일과 볼링을 병행했다. 볼링을 하며 깨닫는 점이 많아서다.
김 회장은 “볼링도 스트라이크를 치는 것보다 마지막 스페어를 잘 잡아야 점수가 좋습니다. 개발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끝까지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김언식 회장 프로필
△1953년 경남 창녕 출생
△1980년 삼호건설 대표
△1995년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 중앙이사
△1999년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 경기도지회 회장
△1995년 한국프로볼링 1기 선수
△2004년 대한주택건설협회 중앙회 제5대 부회장
△2004년 DSD삼호 회장
△2008년 대한주택건설협회 중앙회 제6대 부회장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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