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3명의 북한 선원들은 정부 관계자들이 귀순 의사를 묻자 같은 답을 했다. 전날 밤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하하던 중 해군에 발견돼 예인된 북한 소형 목선에 타고 있던 이들이었다. 목선의 돛대에 흰색 천을 매달고 있었지만 이들은 북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군 당국은 대공용의점이 없다고 판단해 29일 오후 3시께 북측에 이들을 인계했다. 최초 발견으로부터 40시간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NLL을 침범하다 적발되는 북한 어선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경제적으로 곤궁해지자 NLL 밑까지 내려와 활동하는 어선이 많아지면서다. 일각에선 불안해하는 시선도 적잖다. 북한이 한국의 대응태세를 시험하기 위해 어선으로 위장해 공작원을 남하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오징어 잡으러 NLL 침범
합동참모본부가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 어선이 NLL을 침범한 횟수는 4년 새 60배 이상 늘었다. 2015년과 2016년 각각 6건, 8건이던 NLL 침범 횟수는 2017년 24건, 지난해 51건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7월까지 386건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이 어선이다. 합참 관계자는 “수온이 낮아지면서 동해 오징어 어장이 NLL 해역에 형성돼 북한 어선이 많이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해군 관계자는 “5월 말부터 북한 어선들의 활동이 늘어나 NLL 남쪽으로 남하할 우려가 커졌다”며 “해군 감시자원을 추가로 투입하면서 적발 건수가 늘어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어선들의 오징어 어획량은 늘었다. 강원 속초수협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이달 15일까지 오징어 어획량은 249t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배 가까이 늘었다. 2016년 북한이 중국에 동해상에서의 조업권을 판매한 것도 북한 어선들이 NLL 인근으로 몰려든 이유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난으로 북한 어선들이 NLL을 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전력을 아끼기 위해 평소 위치확인시스템(GPS)을 꺼놨다가 필요할 때만 잠깐 켜는 경우가 많아 항로를 착각한다는 것이다. GPS가 아예 없는 목선들도 어업 활동에 나서면서 항로 착오 사고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7일 밤 동해 NLL을 넘어와 해군에 예인된 북한 주민 3명 역시 나침반에 의존하다 항로를 착각해 남하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북한이 자력갱생에 나서면서 어업 활동을 늘린 것도 이유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군이 감시활동을 벌이는 범위는 동해의 경우 북위 38도 36분 06초를 기준으로 그어진 NLL 404㎞까지다. 여기에는 공해도 포함된다. 해군 관계자는 “감시활동 범위는 육지의 4배가량”이라며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이 넘어와도 대응하고 조치한다”고 설명했다.
“북 선원 조사 너무 짧아”
일각에서는 NLL을 넘어 남하한 어선들의 정체를 의심하는 눈초리도 있다. 북한이 한국군의 경계태세를 시험하기 위해 어선들을 내려보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탈북자는 “북한에선 남한 군당국의 대공용의점 포착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군인이 아닌 이들을 남쪽으로 보내기도 한다”며 “최근 북한 어선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건 새로운 대남 침투 루트를 점검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NLL을 넘어 내려온 북한 선원 조사 기간이 지나치게 짧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 들어 NLL을 넘어온 북한 선원들에 대한 조사 기간은 지속적으로 짧아지고 있다. 정부는 최초 발견한 날로부터 4~7일가량에 걸쳐 대공용의점을 조사하고 송환 절차를 마무리 지어왔지만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2~3일로 짧아졌다. 지난 27일 NLL을 넘어온 북한 선원 3명은 발견 40여 시간 만에 송환됐다.
신원식 전 합참 차장은 “해류가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여름에 북한 선박들이 NLL을 넘어 남하한 건 귀순 의도가 있거나 침투를 꾀했거나 둘 중 하나”라며 “남북 군사합의로 인해 대북 경각심이 약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만큼 더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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