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볼드윈 '글로보틱스 격변'
'글로보틱스' 노동시장 미치는 영향 분석
[ 오춘호 기자 ]
아멜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인공지능형 업무비서 로봇이다. 이 로봇은 사람들의 감정 표현을 읽는 프로그램까지 내장하고 있다. 고객들의 이전 기록에서 그들이 불편해하는 모든 문제를 이미 숙지하고 있다. 고객과의 대화를 편안하게 이끌며 문제를 해결한다. 외국어도 능숙하고 24시간 일을 해도 피로감이 전혀 없다. 세계 각국 정부가 아멜리아를 앞다퉈 고객 응대 로봇으로 채택하는 이유다.
지금 세상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코 ‘디지털화’와 ‘글로벌화’다. 이 둘은 서로 맞물려 각국 경제성장에 영향을 끼쳐 왔다. 지난 미국 대선의 도널드 트럼프 선풍,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 등은 이 두 가지 변화에 경쟁력을 상실한 지역의 반발로 볼 수 있다. 디지털화와 글로벌화는 제조업과 블루칼라에 주로 영향을 미쳐왔다. 공장 자동화로봇은 근로자들의 실직에 직접 피해를 안겨줬다. 이제 이 두 가지 변화는 그동안 피해가 적었던 화이트칼라를 다음 타깃으로 삼고 있다.
리처드 볼드윈 스위스 제네바대학원 교수는 최근 펴낸 《글로보틱스 격변(The Globotics Upheaval》(옥스퍼드대 출간)에서 로봇과 인공지능 도입이 노동의 글로벌 유통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천착한다. ‘글로보틱스’는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과 로보틱스(로봇공학)를 결합한 조어다.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자문위원을 지낸 볼드윈 교수는 책에서 “이 두 가지가 결합하는 가공할 만한 속도는 인류가 각각에 적응하려는 노력까지 파괴시킨다”고 지적한다.
그는 우선 글로보틱스가 보여주는 두 가지 대전환으로 가상현실(VR) 등을 통한 실감형 텔레프레즌스(가상회의)와 자동언어번역을 꼽는다. 텔레프레즌스는 생생한 영상 이미지를 통해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치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홀로그램으로 작동하는 미래 회의 시스템을 이미 도입하고 있다. 자동언어번역의 발전 속도도 ‘대전환’이라 부를 만하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자동언어번역 시스템은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볼드윈은 “자동언어번역 기능 향상으로 영어로 말하는 인구 10억 명이 그렇지 않은 나머지 60억 명과 직접적인 경쟁을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도구들을 사용해 조직이 원격으로 일하는 데 익숙해지면 기업들은 더 싼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법조인이나 엔지니어, 회계사, 세무사 등을 전 세계에서 찾게 된다. 이미 이들을 중개하는 사이트가 하나둘이 아니다. 저자는 이런 직종의 종사자들을 ‘텔레미그랜트(원격이민자)’라고 부른다. 그는 당장 이 두 가지 시스템이 서구의 고임금 화이트칼라 경제를 파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저자는 “이런 변혁이 서구권 전문가들에게는 놀랍도록 불공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글로보틱스가 이런 작업을 모두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이런 변혁을 300년 전의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 40년 전의 ‘서비스 전환(Service Transformation)’과 비교한다. 300년 전 시작한 농업에서 제조업으로의 전환은 100년이 지나서야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1973년 컴퓨터 칩 개발로 이뤄진 공장 자동화와 정보화는 제조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상당수의 제조업 근로자들은 서비스업으로 전환했다. ‘서비스업 전환’은 ‘대전환’보다 빨리 진전했지만 198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두 변혁 모두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1820년대 시작된 산업혁명과 사회혁명은 100년 후 코뮤니즘과 파시즘을 일으켰고, 1970년대 제조업의 쇠퇴는 2010년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트럼피즘과 브렉시트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글로보틱스 전환은 이전의 기술적 전환과 마찬가지로 많은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볼드윈 교수는 관측한다. 지금 구글이나 아마존, MS 등이 주도하는 전환도 직업 창조보다 대체에 무게가 실린다. 저자는 “사람들이 기술 발전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일시적으로 도피하고 싶은 셸터리즘(피난심리)이 퍼져 나가고 전환에 대한 반발도 거셀 것”이라며 “새로운 직업의 창조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는 “글로벌화와 로봇화가 동시에, 그것도 빠른 속도로 진행돼 사회를 변혁시킬 것은 확실하다”며 “하지만 속도 조절은 분명 가능하고 그건 사회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