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
지소미아 '압박 카드'엔 우려
[ 주용석/김동욱/임락근 기자 ]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갈등과 관련해 중재나 조정 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일 갈등은 당사자인 한·일이 직접 풀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대신 미국은 한·일 갈등이 악화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며 ‘대화 판’을 까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국무부 고위당국자는 지난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직후 기자들을 상대로 한 익명 브리핑에서 “미국은 중재(arbitrating)나 조정(mediating)에 관심이 없다”며 “그 입장은 기존과 변함없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한·일 갈등에서 중재자가 되지 않겠다는 말이냐’는 질문에도 “1965년 (한·일) 협정에 중재·조정에 관한 절차가 있다”며 “미국은 (한·일 갈등에) 개입돼 있지만 중간에 끼어드는 건 긍정적인 결과를 못 낼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서울과 도쿄 간의 문제”라며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처음도 아니다”고 했다. 이어 “이번 갈등은 빨리 끝나야 하지만 (미국이) 더 이상 추가 조치를 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당국자는 “이번 갈등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쪽에도 확실히 감정적인 문제”라며 “미 정부가 하는 일은 이런 문제가 ‘통제 불가’ 상태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성과 장기적 관점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미·일) 3국이 만났다는 사실은 해법 혹은 적어도 해결책을 찾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것”이라고도 했다.
또 다른 당국자도 ‘한·일 양국 관계의 종말을 보는 것 같다’는 취재진의 지적에 “아니다. 양측은 해결책을 찾는 데 아주 관심이 많다. 그것은 분명하다”고 반박했다. 한 당국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한국과 일본에 현상동결 합의를 제안했느냐’는 질문에 “현상동결 합의 같은 것은 없었다”면서도 “이번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사태는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분명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브리핑은 4명의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가 현안에 대해 익명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모두 핵심 동맹인 만큼 어느 한쪽 편을 들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워싱턴DC의 한 소식통은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수출 통제를 하고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은 잘못이라고 보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빌미를 제공한 건 한국 아니냐는 시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과거사 문제와 일본의 수출 통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외교안보 분야로 확산되는 걸 경계하고 있다. 특히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뒤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걸 우려하는 분위기다. 미 국무부 당국자는 “한·일은 미국이 동북아시아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에 의존하는 만큼 서로 의존하고 있다”며 “그중 하나라도 잃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며 서로를 방어할 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했다. 다른 당국자도 “이 관계가 무너지면 미국의 안보도 위태로워진다”고 했다.
이와 관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방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보복조치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지소미아를 중단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강 장관은 “지소미아 문제는 한·미·일 안보 협력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며 “우리로서는 모든 걸 테이블 위에 올리고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시행 예정일인 오는 28일부터 당장 주요 산업에서 전면적으로 한국의 목줄을 죄는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들어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징용피해자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경제보복 조치에 나선 데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는 조치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반적인 수출 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단 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과의 협상카드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처음부터 전면적인 수출규제를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워싱턴=주용석/도쿄=김동욱 특파원/임락근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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