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이 최대 피해국" 확산…기관 방어에도 증시 속수무책

입력 2019-08-06 17:34   수정 2019-08-0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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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무역전쟁 격화
등 터지는 한국 증시

美-中, 韓-日 갈등 격화
당분간 탈출구 찾기 어려울 듯



[ 임근호/양병훈 기자 ] 6일 국내 증시가 또 한 번 출렁였다. 전날 폭락에 따른 기술적 반등이라도 기대됐지만 속절없이 하락세를 이어갔다. 코스피지수는 장중 1900선이 무너졌다. 기관이 1조원어치 넘게 순매수한 끝에 가까스로 1900선을 지켰지만, 외국인이 연일 팔고 있어 1900선 사수가 위태롭다는 분석이다. 한·일 무역갈등과 미·중 경제전쟁 등 ‘겹악재’에 한국이 최대 피해국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투자심리가 급랭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의 실적에 견줘 보면 1900선이 ‘단단한 바닥’이지만 불확실성이 크고 대외 악재가 많아 ‘진짜 바닥’일지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3년6개월 만에 깨진 1900선

코스피지수는 이날 29.48포인트(1.51%) 내린 1917.50으로 마감했다. 개장 9분 만에 전날 종가(1946.98)보다 2.83% 낮은 1891.81로 추락했다. 장중 1900선이 깨진 것은 2016년 2월 18일(1898.49) 후 3년6개월 만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탓”이라며 “미·중 갈등이 무역분쟁을 넘어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고조됐다”고 말했다.

1900선을 사수한 것은 이날 1조337억원어치를 순매수한 국내 기관투자가 덕분이다. 2016년 1월 28일(1조6441억원) 이후 최대 순매수다. 금융투자(증권사)가 5221억원, 연기금이 4327억원어치 주식을 사들이며 방어에 나섰다. 연기금은 최근 사흘 동안에만 1조4160억원 규모를 순매수했다. 시장에선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금융투자업계 전문가 간담회’에서 “정부가 증시안정기금 같은 것을 조성할 생각도 있지만 현재로선 연기금이 가장 풍부한 매수 여력을 가진 주체”라며 연기금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현재 코스피지수 주가순자산비율(PBR:시가총액/순자산)은 0.8배 수준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다. 증권가에서 시장이 더 떨어지기 힘들다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미·중 무역분쟁, 한·일 무역갈등 등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투자 심리는 그때보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한국의 교역 비중을 보면 중국이 23.6%, 일본이 7.5%로 두 국가를 합치면 31.1%”라며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교역의 3분의 1을 잘라놓고 경제가 온전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투자자들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규모 매도로 돌아선 외국인

외국인 움직임이 특히 심상치 않다. 올 들어 7월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7조1935억원어치를 순매수한 외국인은 이날 605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최근 사흘 동안 순매도 규모는 1조3178억원에 이른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고, 미국이 다음달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시기와 일치한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미·중 환율전쟁의 최대 피해를 한국이 볼 것이라는 우려가 외국인 매매에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미·중 환율전쟁 유탄을 맞을 수 있는 대표적인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기도 했다. 대외 변수가 불거진 이달 들어 주요국 증시 중 한국 시장 낙폭이 가장 컸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당장은 연기금이 증시를 받쳐주고 있지만 외국인의 이탈이 계속된다면 연기금만으로는 지수 하락을 방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조작국 지정을 계기로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200원대를 넘어서면서 외국인으로선 국내 증시에 투자할 매력이 줄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 센터장은 “환율이 오르면(원화 약세)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야 하지만 지금은 무역갈등으로 수출이 늘어나기 어렵다”며 “오히려 외국인이 환차익을 내고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갈 빌미만 되고 있다”고 했다.

당분간 국내 증시는 기업 실적 등 펀더멘털(기초체력)보다는 국가 지도자들의 말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투자자들이 공포와 공황상태에 빠져 있어 PBR이 별 의미가 없다”며 “미·중이나 한·일 간에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신호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임근호/양병훈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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