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위기대책 안보인다"
두 경제 원로의 '개탄'
[ 조재길/성수영 기자 ] “정말 걱정됩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 경제’ 재건을 주도한 진념·전윤철 전 부총리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다. 한·일 갈등, 미·중 분쟁 등 엄중한 현실 자체보다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을 답답해했다. 생산 투자 고용 등 경제지표가 고꾸라진 상황에서 금융시장마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화려한 말잔치’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게 두 경제 원로의 질타였다.
진 전 부총리는 “외환위기 때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전·현 정부 인사를 가리지 않고 위기대응팀을 꾸렸다”며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경제 살리기에 매진한 결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2년 이상 앞당겨 벗어났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무슨 금 모으기로 당시 빚을 다 갚았다느니 발언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국가가 위기 상황인데 실질적인 대응책은 마련하지 않고 감정적 수사(修辭)만 난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금이 표만 따질 때인가”라고도 했다.
전 전 부총리도 당·정이 ‘감정 대응’에 치우쳐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우리 산업구조는 일본 기술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탈(脫)일본을 강조하고 있지만 경제 문제를 어떻게 자존심만으로 해결하느냐”고 반문했다.
전 전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한 경협과 평화경제를 강조했는데 지금 필요한 건 고도의 기술력이지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도 (위기대응 카드를 마련할) 내각은 보이지 않고 청와대 목소리만 들린다”며 “내가 부총리일 때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내부 정책결정 과정에만 참여하고 외부 대응을 자제하도록 했었다”고 말했다.
진념·전윤철 전 부총리는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정의 큰 틀을 훼손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진 전 부총리는 “정치권 일각에서 한·일협정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다 뒤집고 북한처럼 폐쇄주의로 가자는 말과 다름없는 것”이라며 “감정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질타했다. 전 전 부총리 역시 “한·일협정은 김대중 정부도 인정했던 국제적 약속”이라며 “과거보다 미래를 봐야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했다.
진 전 부총리는 국익을 위해 정치 생명까지 포기했던 독일의 사회민주당 사례를 소개했다. 2000년대 초반 실업자 수가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지만 진보 정권이던 독일 사민당이 강력한 노동개혁으로 ‘유럽병’을 치유했다는 것이다. 과도하게 늘어난 사회복지를 줄이고 자유시장경제로 방향을 튼 ‘아젠다 2010’ 정책을 시행한 결과다. 진 전 부총리는 “사민당이 국가 장래를 위해 복지 지출을 감축하면서 2005년 총선 및 정권 연장에 패배했지만 독일 부활의 기틀을 닦았다”며 “정치꾼이 아니라 진정한 일국의 지도자라면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전 부총리는 “말만 앞세워선 안된다”고 거듭 당부했다. 그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전면에 나서면 오히려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좁힐 수 있다”며 “각 부처 장관 등 내각이 앞장서고 책임까지 지도록 만들어야 경제정책이 원활하게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 전 부총리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도 (청와대에 가려) 내각이 잘 보이지 않는 건 큰 문제”라고 우려를 덧붙였다.
‘퍼펙트 스톰’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전 전 부총리는 “(경제 상황을 보면)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북한과의 경제협력만 봐도 우리 희망사항일 뿐이지 현실적으로 쉽겠느냐”고 했다. 외환위기 때의 이헌재 전 부총리나 금융위기 때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처럼 정부 내 ‘위기의 해결사’가 보이지 않는 게 시장 불안을 키우는 또 다른 요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재길/성수영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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