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보니…
외환보유액 2배 늘고, 단기외채 비중 절반 줄었지만
수출 8개월째 마이너스·투자 위축…펀더멘털 '흔들'
금융위기 때처럼 강한 외부충격 땐 혼란 빠질 수도
[ 이태훈/김익환/서민준 기자 ]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고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퍼펙트 스톰’(여러 가지 악재가 한꺼번에 터져 생긴 초대형 위기)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와 청와대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괜찮다”고 설명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일 “한국 경제의 대외 건전성은 과거보다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했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전날 “금융 또는 경제 펀더멘털 상황이 (과거 위기 때와는)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 단기외화부채비중 등 금융지표는 비교적 양호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경제성장률, 수출, 투자 등 거시지표는 가장 최근 경제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에 비해 오히려 좋지 않다. 전문가들은 “수출 등의 하락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 강력한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큰 혼란에 빠질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외환보유액 금융위기 때의 두 배
금융시장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많이 쓰이는 게 외환보유액, 신용부도스와프(CDS), 단기외채비중이다.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기준 4031억달러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2008년 9월 발생했다. 그해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012억달러였다. 현재는 그때보다 두 배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CDS 프리미엄도 지난 6일 기준 32.7bp(1bp=0.01%포인트)로 2008년 12월 말(318.7bp)과 비교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CDS 프리미엄이 낮다는 것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한국 국채의 부도 가능성을 그만큼 낮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전체 외채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3월 말 기준 28.2%로 2008년(47.1%)에 비해 낮은 편이다. 단기외채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정할 경우 만기 연장이 어렵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으면 외환위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금융지표 중 환율과 외국인 자금은 최근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7일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14원90전으로 마감하며 올 들어서 8.5% 상승(원화가치 하락)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달 들어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4212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수출·투자 동반 부진
금융지표와 달리 거시지표는 좋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성장 정체가 최근 수년간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의 외형이 커진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차이를 보여주는 아웃풋 갭은 2012년부터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한국이 낼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성장률에 매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도 아웃풋 갭은 플러스였다. 이듬해 위기 여파로 마이너스로 돌아섰으나 1년 만에 회복했다.
2008년 경제성장률은 3.0%였다. 지난해 성장률은 2.7%로 이보다 낮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2.2%로 예상하고 있다. 잠재성장률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7년 예상한 2010년대 잠재성장률은 3.0%였지만 올 5월에는 이를 2.6~2.7%로 수정했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수출은 올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8.5% 감소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도 수출은 13.6% 증가했다. 월별 수출 역시 작년 12월부터 올 7월까지 8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올 상반기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8.8% 줄어 2008년(-2.2%)보다 감소폭이 컸다. 올 상반기 전(全)산업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에 그쳤다. 2008년에는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와 투자가 나빠지고 있고 잠재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며 “펀더멘털이 허약한 만큼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또 “외환보유액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수준”이라며 “한국 경제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의 인식이 나빠지면 자금이 급속도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훈/김익환/서민준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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