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

입력 2019-08-07 17:55  

[ 김태철 기자 ] “한 아이를 입양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 입양천사’로 불리는 앤젤리나 졸리가 2002년 영국 일간지 데일리미러에 털어놓은 장남 매덕스의 입양 이유다. 졸리는 오는 9월 연세대에 입학하는 매덕스를 포함해 6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 3명은 전 남편인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샤일로, 비비언, 녹스)이고 3명은 입양아들이다. 장남 매덕스, 차남 팍스, 장녀 자하라는 각각 캄보디아, 베트남, 에티오피아 출신이다.

입양이 보편화된 선진국답게 미국의 스타 중에는 각별한 사랑으로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이 많다. 여배우 캐서린 헤이글은 2009년 우리나라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던 여아를 입양해 화제를 모았다. 가수 마돈나는 자녀 6명 중 4명을 입양했다.

국내 연예인 중에서는 차인표·신애라 부부 사연이 잘 알려져 있다. 부부는 두 딸을 각각 2005년과 2007년 입양했다. 배우 이아현 씨도 지난 5월 TV에 출연해 입양한 딸을 우등생으로 키워낸 사연을 소개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입양은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 오히려 선진국 수준의 국가 중에서 유일한 ‘아동 수출국’이다. 뿌리 깊은 순혈주의 탓이다. 2017년 기준으로 4100명의 어린이가 부모에게서 버려졌지만 국내 입양은 465명에 그쳤다.

6·25전쟁 정전 직후부터 시작된 해외가정으로의 입양이 67년째 이어지고 있다. 입양 조건을 강화한 2012년 이전까지 22만여 명의 어린이들이 해외 가정으로 보내졌다. 이후에도 매년 300~400명 정도가 한국을 떠나고 있다.

해외 입양아 중에는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적지 않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사회당 정부에서 문화장관과 국가개혁장관을 각각 지낸 플뢰르 펠르랭과 장 뱅상 플라세가 대표적이다. 당시 현지 언론들은 “프랑스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호평했지만 ‘아동 수출 1위’ 한국의 어두운 이면도 동시에 부각됐다.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 결혼과 출산만이 가족을 형성하는 방법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급격한 저출산을 맞아 입양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핏줄을 해외로 내몰지 말고 우리가 먼저 보듬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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