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62) 치명적인 실수
“인간은 실수하기 마련이다”는 말을 한 사람은 고대 로마시대 정치가이자 철학자 그리고 비극 작가였던 세네카(기원전 4년~기원후 45년)다. 이 명언은 다음과 같은 긴 라틴어 원문의 앞부분이다. “Errare humanum est, sed perseverare diabolicum(에라레 후마눔 에스트 세드 페르세베라레 디아볼리쿰).” 이 문장을 번역하면 “실수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오만 때문에) 실수를 계속하는 것은 극악무도하다”가 된다.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어린 시절 개인 교사였다. 네로의 악의적인 성격을 간파해 <자비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에 네로의 미래를 예상하듯 이 문구를 남겼다. 네로 황제의 분노를 산 세네카는 결국 자결 명령을 받았다. 그의 잘린 목과 사지는 로마광장에 전시돼 웃음거리가 됐다. 프랑스에서 종교, 정치 그리고 경제 개혁을 일으킨 장 칼뱅은 1532년 <자비에 관하여>에 대한 주석을 달아 종교개혁가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당시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게 탄원했다.
비극 무대 위 ‘실수’
고대 그리스 비극의 관객은 주인공의 실수를 제3자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봤다. 주인공은 자신을 파국으로 몰아간다. 그는 항상 자신의 행위를 최선이라고 여기지만, 관객은 그의 행위가 자기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치명적인 실수라는 사실을 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유일한 사람은 주인공뿐이다. 관객은 그의 실수가 몰고올 결과로 인해 공포에 휩싸이고, 그가 처할 운명에 연민을 느낀다. 관객은 무대 위 주인공의 말과 몸짓에 몰입해 하나가 되면서 인생에서 겪지 말아야 할 최악의 상황에 처한 자신을 상상해본다. 그리스 비극 공연은 시민들이 공동체에서 가장 불운한 사람이 돼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연습이다. 자신이라는 이기적인 경계를 넘어 타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민교육이었다.
‘과녁 빗나가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13, 1453a9~10, 15~16에서 주인공의 치명적인 실수를 언급한다. 그는 비극적 주인공의 치명적 실수를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라고 불렀다. 하마르티아의 원래 의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한다. 그 의미는 ‘과녁 빗나가기’다. 궁수가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렸지만, 마땅히 가야 할 과녁에 적중하지 못하는 상태다. 화살이 과녁에 못 미치거나 과녁 옆으로 비껴가거나 과녁을 넘어 과도하게 날아가는 모든 경우가 하마르티아다. 궁수가 화살로 과녁을 명중시키지 못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과녁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혹은 그 존재를 인식하더라도 활쏘기 연습을 게을리 해 화살을 과녁 안으로 보내지 못하는 경우다.
‘과녁 빗나가기’라는 함축적인 의미의 하마르티아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비극에서는 도덕적인 의미를 취했다. 인간이 본연의 위치와 임무를 망각할 때 그가 저지르는 치명적인 실수다. 주인공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 그는 사건과 사람들을, 비극을 관람하는 관객처럼 객관적으로 관조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주인공의 그런 마음을 ‘오만(傲慢)’이라고 부른다. 오만은 주인공의 위치와 주인공이 가야만 하는 길을 어둡게 하기 때문에 주인공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한없이 헤맨다. 오만한 자는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장님이 된다. 주인공은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자초하는 치명적인 실수인 하마르티아를 저지르게 된다.
데이아네이라는 젊은 여인 이올레에게 남편의 사랑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한탄한다. “그녀(이올레)와 한집에 살면서 결혼의 행복을 나눠 가질 수는 없습니다. 어떤 여자가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그녀의 젊음은 피어나기 시작하고 내 젊음은 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사람은 피는 꽃은 따 모으기 좋아하지만, 시든 꽃들로부터는 발길을 돌립니다.”(545~549행) 헤라클레스는 명목상 남편이지 사실은 이올레의 남자가 됐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되돌릴 묘책을 생각해낸다.
헤라클레스의 화살
데이아네이라에게 묘책은 ‘구원의 수단’이다. 그는 합창대를 향해 자신이 어떻게 헤라클레스를 만났는지 노래한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부의 몸으로 헤라클레스를 만나기 위해 에우에노스의 깊은 강을 건너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강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 강에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족의 일원인 네소스가 있었다. 그는 보수를 받고 도강을 원하는 사람들을 팔로 안아 건네줬다. 네소스는 데이아네이라를 어깨에 둘러메고 강 한복판에 왔을 때 그를 겁탈하려 했다. 순간 강 건너편에서 데이아네이라의 비명을 들은 헤라클레스가 깃털 달린 화살을 쏴 네소스의 가슴에 명중시켰다. 네소스는 죽어가면서 데이아네이라에게 다음과 같은 허망한 유언을 남긴다. “오이네우스 왕의 따님이여! 내가 강을 건네준 것이 당신에게 큰 이득이 될 것입니다. 만일 그대가 내 상처, 그중에서도 히드라의 담즙으로 화살이 까맣게 물들었던 곳 주위에 엉겨 붙은 피를 손으로 모은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헤라클레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법의 약이 될 것입니다. 그가 그대보다 더 사랑하려고 다른 여인을 쳐다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566~577행)
히드라는 ‘물에 사는 짐승’이란 의미다. 헤라클레스의 ‘12 고역’ 중 하나는 히드라를 죽이는 일이었다. 히드라는 머리를 자르면 그곳에서 더 많은 머리가 자라났다. 헤라클레스는 불을 붙인 활인 화전(火箭)을 쏴 제압했다. 헤라클레스가 화전을 쏘면, 그의 조카 이올라오스가 머리가 잘린 목 부분을 불타는 나무로 지졌다. 히드라의 독은 치명적이다.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의 사랑을 소유하고 싶어, 악의에 차 거짓 유언을 남긴 네소스의 말을 어리석게도 진실로 받아들인다. 그는 네소스로부터 받은 선물, 즉 헤라클레스가 네소스를 죽일 때 사용한 히드라의 독을 사랑의 묘약이라 착각한다. 사랑에 눈이 먼 그녀의 치명적인 실수다. 그는 전령 리카스를 통해 이 독이 칠해진 윗옷이 담긴 항아리를 헤라클레스에게 보낼 것이다. 트라키스의 여인들로 구성된 합창대는 헤라클레스가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한다. 마법의 옷을 입고 네소스의 말처럼 사랑에 흠뻑 빠져 데이아네이라와 조우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소유욕의 결과는
데이아네이라의 설렘이 한순간에 걱정으로 변한다. 그가 축제에 나가기 위해 네소스의 피를 양모에 바르니, 양모가 한순간에 오그라들면서 소멸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감지한다. “내가 끔찍한 짓을 저질렀어요. 대체 내게 무엇 때문에 그 괴물이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온 나에게 호의를 베풀겠습니까? 그자는 자기를 쏘아 맞힌 자를 없애려고 나를 혼미하게 만들었습니다.”(705~710행) 그는 자신이 보낸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가 자신을 향한 사랑에 빠지기는커녕 그 즉시 독에 감염돼 죽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아들 힐로스가 등장하면서 어머니를 찾으며 외친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에게 다음 세 가지를 원합니다. 더 이상 살아계시지 마세요. 살아계신다면 다른 사람의 어머니라고 불리십시오. 혹은 지금보다 더 나은 마음씨를 가지십시오.”(735~737행) 힐로스는 어머니 데이아네이라가 아버지 헤라클레스를 오늘 죽였다고 말한다. 그가 아버지와 재회하는 순간 전령인 리카스가 도착해 어머니의 선물, 즉 죽음의 옷을 선물했다. 헤라클레스는 그 옷을 입고 기뻐하면서 전리품을 챙기고 가축 100마리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의례를 행했다. 그 순간에 비극이 일어났다. 헤라클레스의 살갗에서 땀이 나고 있었다. 그의 윗옷이 그의 양 옆구리에 엉겨 붙어 온몸에 독이 퍼지기 시작했다. 헤라클레스는 비명을 지르고 땅바닥을 구르며 신음하기 시작했다. 힐로스는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를 간신히 모시고 왔다. 힐로스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어머니에게 외친다. “어머니, 어머니는 제 아버지께 이런 일을 궁리하고 행하다 발각되셨습니다. 그 죄로 정의의 여신과 복수의 여신께서 어머니를 벌하시기를!”(807~809행) 사랑을 자신의 물건처럼 소유하려는 데이아네이라의 욕심이 치명적인 실수를 유발했다. 자, 이제 그는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해야 하는가?
배철현 < 작가 ·고전문헌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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