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무라 카즈키·이케우치 히로유키·다이고 코타로
'나랏말싸미', '박열' 등에 출연한 야마노우치 다스쿠도 '눈길'
한국배우 심은경, 아베정권 비판 영화 '신문기자' 출연
'매국노'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한국 영화에 출연한 일본인이 있다. 오사카 출신 배우 기타무라 카즈키의 이야기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반일 감정이 고조된 가운데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항일 전투를 다룬 영화 '봉오동 전투'가 지난 7일 개봉했다.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첫 대규모 승리를 쟁취한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를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기타무라 가즈키는 '봉오동 전투' 주인공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못지 않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독립군을 쫓는 월강추격대 대장 야스카와 지로 역을 맡아 위압적은 아우라를 풍기며 냉혹하고 잔혹한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
기타무라 가즈키는 그동안 '탐정 갈릴레오', '밤비노', '고양이 사무라이' 등 작품을 통해 일본에서의 입지를 다졌다. 최근 '시그널' 일본판인 '시그널 장기 미제 사건 수사반'에서 원작의 조진웅이 연기한 캐릭터를 맡아 호평 받았다.
일본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항일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기타무라 가즈키 소속사 측은 '봉오동 전투'가 반일 영화이기 때문에 출연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배우는 '어떤 역할이든 해내야 한다'며 출연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보수계열 주간지 주간신조(週刊新潮)는 '봉오동 전투'를 "독립운동가들이 이끄는 항일 게릴라단의 싸움이 테마인 반일 영화"로 폄훼했다.
그러면서 "9월부터 NHK 아침 드라마 출연도 예정된 기타무라 가즈키가 매국노로 몰릴지도 모르는 이런 종류의 영화에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비판했다.
이 잡지는 영화가 일본 내에서도 문제가 될 경우 그가 현재 출연 중인 CF 광고에서 하차할 가능성도 거론했다.
반대로 국내에선 그의 출연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 커뮤니티 등에서 "소신이 대단하다", "개념배우" 등의 응원이 이어진다.
이 영화에는 기타무라 가즈키 외에도 독립군 포로가 된 소년병 유키오 역에 다이고 코타로, 월강추격대 중위 쿠사나기 역에 이케우치 히로유키가 이름을 올렸다.
이케우치 히로유키는 개봉일에 맞춰 "한국영화 '봉오동 전투'가 공개됐다. 반년 동안 촬영했다. 한국 작품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라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제작진, 배우 모두 멋졌다"며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봉오동 전투'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은 "이 작품을 준비하며 일본인 배역은 일본 배우가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리얼리티가 살아나 관객에게 더 전달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이어 "조심스럽게 제의했는데 많은 분들이 출연 의사를 전해와 놀랐다"고 말했다.
영화 관계자는 "일반적인 절차대로 해외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일본 배우들을 섭외했고,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영화 '봉오동 전투' 측은 개봉 전부터 일본인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가 현지에서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일 영화는 아니지만 '나랏말싸미'에도 일본인 배우가 출연한다. 이 영화는 온갖 역경을 딛고 새 문자 창조에 나선 세종대왕(송강호)과 그를 음지에서 도운 신미 스님의 이야다.
극 초반 일본 승려들이 사신으로 와서 팔만대장경을 달라고 투쟁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일본 스님 규주 등은 원판을 줄때까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번에도 대장경판을 받아가지 못하면 식술들이 다 죽는다. 고려 같은 대국도 16년 걸린 사업인데 우리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이 대사다.
이 장면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다. 팔만대장경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신이라 관객에게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일본 스님 규주 역을 맡은 이는 일본 배우 야마노우치 다스쿠다. 그는 앞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에서 박열의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 역을 연기한 바 있다. 그는 '덕혜옹주', '임진왜란 1592'에서 임진왜란에 참전한 무장 가메이 고레노리 역으로 눈도장을 받았다.
반면 일본영화에 출연한 한국 배우도 있다. 독특한 캐릭터와 물 오른 연기력으로 활발히 활동 하고 있는 심은경이다.
심은경은 아베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영화 '신문기자'에서 여성 신문기자 요시오카 에리카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도쿄신문 사회부 기자 모치즈키 이소코가 아베의 가케 학원 스캔들에 대해 집요하게 파헤쳤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이는 아베 총리 부부와 관련이 깊은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이 국유지를 헐값에 분양받았다거나, 아베 총리 친구가 운영하는 가케학원에 수의학부 신설 허가를 내주도록 문부과학성 관료들이 관련 담당자들에게 압박을 가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일본 매체에 따르면 미야자키 아오이, 미츠시마 히카리 등 여배우에게 제안이 갔으나 반정부 이미지가 붙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모두 거절했다.
실존 인물은 일본인이나 일본인 여배우들이 출연 거부를 하는 바람에 심은경에게 역할이 돌아가게 됐고, 영화 내 요시오카 에리카 역은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것으로 설정이 변경됐다.
영화 내내 일본어로 연기해야 했던 심은경은 "설정 자체가 일본의 현재 상황과 닮아 있지만 픽션"이라며 "이야기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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