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관련 사업주 벌칙 규정
韓 65개…獨·中은 6개 불과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은 韓만
[ 서민준 기자 ] 법을 위반한 기업을 처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징역형 등 형사처벌 외에도 행정벌인 과태료 부과, 정부 조사를 통한 피해자 구제 명령 등이 있다. 민사소송으로 해결하게 놔두는 방법도 있다. 선진국은 대체로 법 위반 정도가 무거운 사안에만 형벌을 적용한다. 하지만 한국은 형벌을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특히 웬만한 사안은 반드시 사업주(최고경영자)를 처벌하도록 한다. ‘형벌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례로 산업안전 사건의 경우 미국과 독일은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했을 때만 형사처벌을 내린다. 처벌 수준도 징역 1년이 최대다. 나머지 사건은 ‘민사 벌칙금(civil penalty)’만 부과한다. 한국의 과태료와 비슷한 제재로 전과기록이 남지 않고 법원 재판도 안 받는다. 반면 한국은 부상만 입은 산업재해 사건도 형벌로 다스린다. 징역을 최대 5년까지 내릴 수 있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에 담긴 사업주에 대한 벌칙 규정은 독일과 중국이 각각 6개에 불과한데 한국은 65개나 된다. 특히 근로시간 위반으로 사업주를 징역형에 처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회사가 노동조합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도 한국에만 있다. 미국과 일본은 노동위원회 조사를 거쳐 회사가 근로자나 노조의 피해를 복구하도록 ‘구제 명령’을 내린다. 한국은 구제 명령도 내리고 형벌도 가한다. 이중 처벌이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공정거래 사건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경쟁법(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의 90~95%가 민사소송으로 해결된다. 이때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통해 피해기업과 개인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게 한다. 반면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웬만한 사건은 다 형사처벌, 과징금 등으로 처리한다. 공정거래법은 담합, 독점, 불공정거래, 기업결합, 사업자 단체 행위 등 5개 분야에서 형벌 규정을 두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다. 영국·캐나다는 담합 분야, 프랑스·아일랜드는 담합과 독점 등 2개 분야에만 형벌을 적용한다. 한국은 형벌에만 치중한 탓에 민사적 해결은 미미하다.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 사건의 민사 손해배상 제기 비율은 30%에 그친다. 범법으로 피해를 본 기업에 대한 구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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