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경제 구성원 희생 덕분에 성장"…재벌개혁 주장
소액주주 보호 위해 집단소송제 도입, 중견그룹 규제 필요성 강조
[ 노경목 기자 ] ‘낙후된 재벌 지배구조’, ‘대기업 견제를 통한 중소기업 육성’, ‘대기업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조성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사진)의 학술활동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7년 귀국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해온 조 후보자는 “외환위기는 재벌의 낙후된 지배구조와 미흡한 정부 감시 체계에서 비롯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중 대사를 맡고 있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전임 공정위원장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공유하는 지점이다. 정부의 대기업 정책이 오히려 강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낡은 기업 지배구조가 외환위기 촉발”
11일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 따르면 조 후보자의 연구활동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때인 1997~2003년 가장 활발했다. 국내학술지 등재 논문 기준으로 7건이 올라, 이후 16년간 이름을 올린 6건보다 많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만큼 주전공인 기업 지배구조 및 규제 분야에서 환란의 원인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그는 1999년 ‘한국 기업의 수익성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재벌의 관계 회사에 대한 투자가 자본 효율성을 낮추고 있다”며 “지배주주가 사적 이익을 추구해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기업의 소유구조가 인센티브와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1998년)에서는 “은행들이 지배주주와 담합해 기업 가치 극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는 2003년 ‘기업 지배구조와 기업 이윤’ 논문에서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가 수익성을 떨어뜨려 외환위기를 촉발시켰다”는 주장으로 귀결됐다.
조 후보자는 소액주주 활동을 통한 재벌 견제를 주장했다. 지배주주도, 기관투자가도 믿을 수 없는 만큼 소액주주에게 더 많은 감시 수단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장하성 대사는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으로, 김상조 실장은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 단장으로 활동했다. 한창 목소리가 커지던 재벌개혁과 소액주주 운동에 조 후보자는 학술적 지원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혜받은 재벌, 사회적 책임 다해야”
조 후보자의 재벌 규제 주장은 이후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2003년 3월 한 학술지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재벌 경제력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치유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치유될 때까지 계열사 간 출자 및 지급보증을 제한하는 등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출자총액제가 폐지된 이듬해인 2010년에는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폐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한국을 ‘가난한 집’에 비유하며 대기업을 ‘맏아들’, 중소기업 등 다른 경제주체를 ‘동생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공개된 그의 마지막 학술 기고문인 ‘대규모 기업집단 정책의 새로운 모색’(2012년)에서다. 여기서 조 후보자는 “가난한 집 맏아들을 위해 동생들이 희생한 것처럼 재벌의 성과가 있기까지 인적·물적 자원을 몰아준 경제 구성원들의 희생이 있었다”며 “그들 때문에 기회조차 받지 못한 기업 및 경제주체들에게 보상해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동생에게는 법 적용이 엄격한 데 반해, 특혜를 받아 성공한 맏아들에게는 법적 책임조차 제대로 묻지 않는다면 동생들이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하고, 법 적용도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대기업 경영 감시와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집단소송제 도입을 주장했다. 또 “대기업의 입찰 담합, 가격 담합, 경쟁제한 또는 불공정 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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