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등 수동적 지원 벗어나
판로 개척·정책 자금 유치 도와
기업 생태계 키워 금융 저변 확대
[ 정소람 기자 ] 중소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A씨는 요즘 집무실에 들어서면 은행의 기업 전용 앱(응용프로그램)을 먼저 열어 본다. 거래할 만한 회사나 새로 출시된 정책자금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의 자금 관리도 무료로 할 수 있다. A씨는 “은행 창구를 가거나 다른 기관을 통해 발품을 팔아가며 해야 하던 업무를 앉은 자리에서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무료 플랫폼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단순한 금융 지원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 살길을 개척할 수 있는 서비스를 총망라한 것이 특징이다. 기업금융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중기 생태계 구축에 은행들이 앞장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 간 ‘중기 대출 경쟁’이 앞으로는 ‘플랫폼 경쟁’으로 확장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기업銀 플랫폼 ‘경쟁’
은행권에서 가장 먼저 중기 플랫폼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은 작년 하반기 기업 자금관리 플랫폼인 ‘스타 CMS’를 출시했다. 기업의 국내외 자금 관리와 단계별 결재, 계열사 간 송금 등을 무료로 할 수 있게 한 서비스다. 입소문이 나면서 출시 11개월 만에 4만 개 기업이 가입했다. 이어 지난해 말과 지난달에는 ‘KB 비즈매칭서비스’(중소기업 전용 판매·구매자 연결 서비스)와 ‘KB브릿지’를 각각 내놨다. KB브릿지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각종 부처 및 기관의 정책 자금을 분석해 각 업체 사정에 맞게 추천해 준다.
후발 주자인 기업은행은 지난 1일 원스톱 경영 지원 플랫폼(앱)인 ‘IBK 박스’를 내놨다. 김도진 행장이 “중소기업의 구글로 키울 것”이라고 직접 언급했을 정도로 2년간 공을 들여 개발한 야심작이다. 출시 9일 만인 지난 9일 이미 가입사 1만 곳을 돌파했다. 대출·재무·정책자금·판로 개척·기업 부동산 매매까지 기업 경영과 관련한 대부분 업무를 앱에서 무료로 할 수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제품 홍보와 거래 기업 확보를 지원하는 ‘생산자 네트워크 박스’에는 며칠 만에 1500개가 넘는 기업이 등록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이르면 다음달 중기·벤처기업을 위한 통합 플랫폼을 내놓는다. 창업 초기 단계의 기업에 좀 더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신한금융그룹은 또 이날 전 계열사를 통합하는 중기 기업금융(IB) 지원 플랫폼을 확장 개편했다. 신한금융투자의 소매금융 지점 93곳이 IB 금융 서비스 채널로 참여하는 게 골자다. 신한 계열사 IB업무가 그동안 상장사나 중견기업에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비상장·중소 벤처기업으로도 영역을 확장한다는 복안이다.
“고객 저변 확대·경제 선순환”
은행들이 앞다퉈 중기 플랫폼을 키우는 것은 고객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기업의 활동 과정에서 금융 서비스 수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기 대출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각 은행은 정부 기조에 따라 예대율 규제를 맞추기 위해 지난해부터 공격적으로 중기 대출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기업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대출 성장세가 주춤한 상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이 은행 플랫폼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게 되면 회사는 해당 은행을 통해 대출 등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금융 간 선순환이 이뤄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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