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핀테크'에 역량 집중해
글로벌 1등 도전
[ 김남영 기자 ] 윤완수 웹케시 대표(56)는 ‘행동파 기획자’다. 2000년대 초였다. 매일 경리 직원이 당시 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윤 대표의 책상 위에 엑셀 인쇄자료를 올려뒀다. 은행 10여 곳과 거래하는 계좌를 정리한 자료였다. 두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받아보는 것은 종이자료일 뿐인데 회사 계좌에 정말 돈이 들어와 있을까.’ ‘이걸 정리하는 데 직원이 왜 매일 한두 시간을 투입해야 하나.’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사내 연구소에 통합계좌 조회시스템 개발을 제안했다. 개발한 시스템을 써 보니 무척 편리했다. 다른 회사에도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직접 기획한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들고 2003년부터 약 2년간 전국 200여 개 회사를 돌았다. 이동한 거리를 따져 보니 10만㎞에 달했다. 타고 다니던 자동차는 폐차장행이었다. 그렇게 고객사의 의견 하나하나까지 모아 탄생한 게 웹케시의 통합자금관리서비스 ‘브랜치’다.
최신 앱 사용하는 ‘행동파 기획자’
윤 대표는 원래 법학도였다. 부산대 법학과를 나와 1988년 동남은행에 입행했을 때도 법무팀에 합류했다. 대리로 승진하면서 낸 기획서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은행도 사무 혁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획서는 기획부장이 단번에 승인했다. 그는 다섯 명으로 구성된 팀의 총괄을 맡았다. 문서를 줄이는 작업부터 시작해 보고 절차를 자동화하고, 협업도구를 도입하는 것까지 사무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을 도맡았다. 이를 계기로 기획업무에 눈을 떴고, 사내 기획 전문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1997년 한국 최초의 교통카드 ‘하나로카드’를 선보인 동남은행팀에도 윤 대표가 있었다.
그러나 그해 외환위기 여파로 동남은행은 주택은행에 합병됐다. 그는 주택은행에 다니다가 석창규 현 웹케시 회장에게 동업을 제안받았다. 1999년 동남은행 전자금융센터 출신들이 의기투합해 웹케시의 전신 피플앤커뮤니티가 설립됐다. 국내 ‘원조’ 핀테크(금융기술)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웹케시의 태동이었다.
윤 대표는 “동남은행은 외환위기 때 사라졌지만 창의적 DNA는 남아 있었다”며 “동남은행에서 업무를 정보기술(IT)로 혁신한 경험은 웹케시에 고스란히 이전됐다”고 말했다. 이후 웹케시는 국내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독점’했다. 편의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가상계좌 등 다양한 혁신기술을 처음 선보였다.
20년 넘게 기획업무에서 손을 놓지 않은 윤 대표의 장기는 트렌드 읽기다. 그의 스마트폰에는 요즘 한창 시끄러운 차량호출 앱(응용프로그램) ‘타다’부터 ‘카카오T’는 물론 동영상 스트리밍 앱 ‘넷플릭스’까지 설치돼 있다.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 앱도 깔았다. 그가 브런치에서 수시로 수집한 글은 400여 개 이상이다. 좋은 글을 읽으며 기획 아이디어를 구상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법학과 출신 기획자라서 좋은 점이 있다고 했다. “마치 판결문처럼 논리적으로 현상들을 엮어내 하나의 결론을 낼 수 있다는 점”이라고 꼽았다. “차량호출 앱에서 자동결제가 이뤄지는 현상을 보며 다음 세대의 금융은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자동결제되는 업무 속 금융 ‘임베디드 뱅킹(embedded banking)’이라는 것을 읽어내는 것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대화가 회의고, 회의가 대화다”
웹케시의 공식 회의는 1주일에 한 번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7시 부문장들과 함께하는 전략회의다. 윤 대표는 격식을 차린 회의보단 대화를 자주 한다. 대화가 회의고, 회의가 대화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직원들과 전화로 통화하다 조금 더 깊게 말해야겠다 싶으면 5분, 10분 잠깐 만나 대화한다”고 했다. “아이디어가 생기면 그때그때 공유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굳이 회의를 자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메신저 앱도 곧잘 활용한다. 웹케시 창업 초기 직원이 개발한 기업용 협업 메신저 앱 ‘플로우’를 통해 내부는 물론 외부 파트너사와 의견을 나눈다. 창립한 지 20년 넘은 기업을 경영하고 있지만 ‘슬랙’ ‘잔디’ 등의 메신저를 활용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처럼 효율성을 추구한다.
윤 대표의 사무실은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 속에 있으나 ‘섬’은 아니다. 출입문에는 ‘대표실’이라고 알리는 문패가 없다. 그냥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 유리문이다. 직원들은 그가 사무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있다. 격의 없고 소탈한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직원들은 말한다.
“망치만 들면 못질할 곳 보여”
2012년 대표직에 오른 그는 결단을 내렸다. 시스템통합(SI), 전사적 자원관리(ERP) 등 해오던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B2B(기업 간 거래) 핀테크’라는 본질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우물만 판다는 전략이었다. 윤 대표는 “핀테크 중에서도 B2B 핀테크라는 사업 분야에서 웹케시는 국내 1등이 됐다”며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며 잃었던 방향을 재정비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웹케시는 2015년 업계 최초로 B2B핀테크연구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선택과 집중으로 내린 판단 및 결정을 망치와 못에 비유했다. 윤 대표는 “도구 여러 개를 들고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맨다”며 “망치 하나만 들고 있으면 못이 보인다”고 말했다. “모든 사원이 못 박는 일 하나에만 집중하면 최대의 힘을 모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업이 활동하면서 수없이 돈을 주고받는 행위를 하는데, 그것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못질’을 해주는 게 웹케시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초 웹케시가 내놔 인기를 끌고 있는 중소기업용 경리업무 자동화 프로그램 ‘경리나라’는 ‘망치와 못’ 전략의 성과다. B2B 핀테크의 기술과 지식을 집약한 것으로, 1만6000여 곳의 중소기업이 경리나라를 쓰고 있다.
그의 ‘망치’는 해외로 향하고 있다. 성장 발판이 될 신흥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웹케시는 경리나라를 앞세워 지난 4월 베트남법인을 설립했다. 이달 본격적으로 서비스에 나설 예정이다. 현지 진출한 국내 은행과 손잡고 베트남 기업을 공략할 계획이다. 윤 대표는 “국내 1등을 넘어 글로벌 1등 핀테크기업으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윤완수 대표 프로필
△1963년 출생
△1982년 진주고 졸업
△1990년 부산대 법학과 졸업
△1988~1998년 동남은행
△1999~2001년 피플앤커뮤니티 이사
△2001~2011년 웹케시 부사장
△2012년~ 웹케시 대표
글=김남영 기자/사진=김영우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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