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늘의 국채발행은 내일의 세금" 잊지 말아야

입력 2019-08-13 17:43   수정 2019-08-14 07:03

세수 줄어드는데 정부·여당 내년 '초슈퍼예산' 추진
민간 투자·소비 더 위축시킬 '재정주도 성장'은 곤란
돈 안 들이고도 경제 활력 되살릴 정책 총동원해야



정부 여당이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더 큰 규모로 편성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일각에서는 내년 예산 규모를 최대 530조원까지 늘릴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올해 본예산(469조6000억원) 대비 12.9%나 급증한 규모다. 올해도 ‘슈퍼예산’이었는데, 내년엔 ‘초(超)슈퍼예산’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정부 여당의 ‘재정중독’은 심각한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하자마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이후 매년 재정 확대와 추경편성을 반복하고 있다. 예산이 300조원에서 400조원으로 늘어나는 데 6년 걸렸는데, 이 정부는 집권 3년 만에 100조원 이상 늘리겠다고 한다. 확장적 재정의 결과가 어땠는지 꼼꼼히 따져봤다면 늘리자고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정부가 온갖 명목으로 재정 지출을 늘려왔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낸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투자와 수출, 소비가 지속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경기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정부지출 확대가 민간의 투자·소비를 위축시키는 ‘구축효과’를 낳았다. 상반기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8.8% 줄었다. 그나마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은 8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기업 수익은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다 미·중 무역갈등 및 일본의 수출규제 등 대외 경제여건 악화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태다.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성장률 1%대 추락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당정이 확장적 재정을 추진하는 것은 내년에도 경기가 심상치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상반기에 세금이 작년보다 1조원 덜 걷히는 등 ‘세수 호황’은 막을 내리고 있다. 내년 세입 여건도 녹록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씀씀이만 늘어나면 재정 건전성은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재정을 안 쓰고도 경제 활력을 높일 방법이 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민간 경제의 활력과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과 획일적 주 52시간제 등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만 커지고 있다. 선진국들이 법인세 인하로 기업투자를 늘린 것과 반대로 한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렸다. 공정거래법과 상법, 산업안전법 등 기업 규제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공유경제, 원격진료 등 신산업은 기득권 반발과 규제에 막혀 있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 투자를 늘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겠는가.

“오늘의 부채는 내일의 세금이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새겨야 할 사실이다. 세금이 덜 걷히면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돈을 끌어다 써야 한다. 미래 세대에 이자까지 붙여 세금을 물리는 무책임한 일이다. 나라 곳간을 헐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기업이 투자를 늘려야 경제에 활기가 돌고 양질의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 재정 확대에 앞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과 수도권 입지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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