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훈/최진석 기자 ]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시간을 두고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2일 민간택지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오는 10월 공포·시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국토부가 기재부 등과 협의해야 한다.
1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 발표 직전 국토부에 “10월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도 곧바로 이를 민간택지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국민에게 분명히 설명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전날 기자들과 만나 분양가 상한제가 경기에 미치는 악영향을 언급하며 “오늘 발표(시행령 개정)는 1단계 조치이고 실제로 적용하는 2단계 조치는 별도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의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뒤 국토부는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이번 조치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모든 지역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다는 게 아니다”며 “주거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 지역에 한해 적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구체적인 지정 지역 및 시기는 제도 개선 이후 주거정책심의위에서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별도로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재부 "내수침체" 경고…상한제 시행 늦춰지나
기획재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에 대한 ‘속도 조절’을 강조하는 것은 경기침체를 더 부추길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바로 시행하면 안 그래도 침체된 내수경기가 더 얼어붙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건설경기가 성장률과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기재부의 고민이 커지는 이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 실질성장률은 전년 대비 -4.2%였다. 2016년과 2017년에는 각각 10.1%, 7.1%였다가 지난해 주택담보대출 규제 등의 여파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건설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고 관련 일자리는 200만 개에 달한다.
국토교통부는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과 실제로 이를 적용하는 게 별개라는 데는 큰 틀에서 동의하고 있다. 다만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언제 적용할지를 두고는 기재부와 국토부의 입장이 미묘하게 다르다. 기재부는 경기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적을 때 이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토부는 집값이 상승할 조짐이 보이면 개정안이 시행·공포되는 오는 10월에라도 당장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기재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결국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의중대로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은 국토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에서 정한다. 이 위원회는 총 24명으로 구성되는데 국토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기재부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 차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관련 공기업 사장 등 13명이 정부 측 위원으로 참여한다.
나머지 11명의 민간 위원은 교수 등 전문가로 국토부 장관이 위촉하지만 명단은 공개하지 않는다. 위원 과반이 출석하면 위원회가 열리고, 안건은 출석 위원 과반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민간 위원과 국토부 영향력 아래에 있는 LH, HUG 등을 합치면 국토부 측 위원만으로도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위원회는 이번 정부 출범 이후 올해 6월까지 총 11차례 열렸다. 이 중 실제로 위원들이 모여서 연 회의는 한 번뿐이다.
이태훈/최진석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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