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포퓰리즘 겹쳐 세계 大혼돈
경제체력 바닥난 한국 더 치명적
오형규 논설위원
[ 오형규 기자 ]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했던가. 우리가 한·일 경제갈등에 함몰된 동안 세계의 정치·경제·안보가 요동치고 있다. 상식이 무너지고, 정규분포를 벗어난 극단의 ‘블랙스완’이 곳곳에서 고개를 든다. 발생 가능성이 아주 희박해도 일단 터지면 엄청난 충격을 줄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미·중 무역전쟁이 상수(常數)가 된 가운데 세계 1~3위 경제대국 미국·중국·일본에서 모두 경기둔화 우려가 나온다. 흔들리는 주가는 혼돈의 초기 증상일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두 달째 이어진 홍콩 사태는 예측불허다. 시위대가 공항을 점거하자 중국 군경이 홍콩 인근 선전에 집결해 “10분이면 진입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전·현직 최고지도부의 베이다이허 회의가 끝나는 이번 주말이 기로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중국의 무력 개입 시 ‘제2 톈안먼 사태’와 세계경제의 ‘블랙스완’이 될 것으로 외신들은 경고한다. 홍콩 무역규모는 지난해 1조2076억달러로 세계 7위다. 한국(1조1443억달러)보다 크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과 경제 쇼크 사이에서 저울질하는데 미국 입장은 모호하다.
유럽도 혼돈의 도가니다. 4위 경제대국 독일은 중국 경기부진 여파로 2분기 마이너스 성장(-0.1%)이다. 5위 영국도 ‘노딜 브렉시트(아무 합의 없이 EU 탈퇴)’ 혼란으로 경제에 급제동(2분기 -0.2%)이 걸렸다. 유럽의 약한 고리인 9위 이탈리아는 연정 붕괴 이후 정국이 예측불허다. 외려 문제투성이였던 6위 프랑스가 선방(2분기 0.2%)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아시아 우등국가인 싱가포르조차 미·중 무역전쟁 쇼크로 2분기 역성장(연율 -3.3%)했다. 민생이 어려워질수록 포퓰리즘이 창궐한다. 남미 아르헨티나는 4년 만에 페론주의의 금단(禁斷) 현상이 다시 투표로 나타났다. 좌파가 집권한 멕시코, 우파정권이 들어선 브라질도 전염이 우려된다. 터키도 시대착오적 철권통치가 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 G20 국가 중 성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범지구적 혼란이 심화돼도 이를 제어할 힘이 안 보인다. 세계질서를 주도했던 G20, IMF(국제통화기금), WTO(세계무역기구) 등은 ‘자국 우선주의’ 앞에 무력화돼 간다. 무엇보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기존 질서 해체에 앞장서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탈퇴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와해돼 군비경쟁까지 재연되고 있다.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동아시아에 배치할 움직임이어서 미·중 간 마찰의 접점은 더 늘게 생겼다. 그나마 큰 전쟁이 억지되는 것은 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서로 경제로 얽히고설켜 전쟁이 더 이상 ‘남는 장사’가 아닌 ‘공멸의 길’이기 때문이다.
도처에 불확실성투성이일 때 돈은 본능적으로 숨을 곳을 찾는다. 국제 금시세가 석 달도 안 돼 19%나 올라(14일 온스당 1515.9달러) 6년 만에 최고수준이다. 2년 내 2000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미국 BOA)까지 나왔다. 마이너스 금리 채권이 14조달러에 이른다. 유럽 국채의 10%가 그렇다.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돈을 퍼부은 결과가 원점회귀라는 허탈감, 위기 재발 시 아무 대책이 없다는 두려움이 커져간다. 경제위기 ‘10년 주기설’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먼 나라 얘기가 실은 지금 여기에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시대를 살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당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인류 미래가 결정된다고 해도 당신과 아이들이 그 결과에서 면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짐했다. 하지만 지구가 통째로 흔들리는데 무슨 수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나. 개인이든 국가든 위기는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닥친다. 경제체력은 바닥이고, 외교는 실종되고, 안보마저 구멍난 한국에는 어떤 ‘블랙스완’이든 더욱 치명적이다. 나라 안도 문제지만, 나라 밖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 싶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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