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현 기자 ] 루이 파스퇴르는 질병의 매개체로 미생물을 연구했고, 로베르트 코흐는 탄저의 원인으로 박테리아를 지목했다. 미생물에 대한 많은 연구 성과와 더불어 미생물은 유해한 것이라는 인식은 깊어졌다. 미생물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 들어서다. 폴란드 그단스크대 교수이자 프랑스 식물학회 회장인 마르크 앙드레 슬로스는 미생물에 대한 묵은 오해를 벗기기 위해 <혼자가 아니야>를 썼다. 너무 작고 눈에 보이지 않아 소홀하기 쉽지만 미생물은 늘 우리 주변에 있다. 책에 따르면 미생물은 균류와 균류보다 작지만 훨씬 많은 박테리아, 세포는 아니지만 다른 세포를 빌려 증식하는 바이러스를 포함한다.
저자는 식물과 동물뿐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미생물과의 공생에 의존해 살아가는지를 하나씩 풀어낸다. 그는 “잊고 있던 미생물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미생물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며 “미생물들은 우리 동물성의 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초식동물의 소화에 관여하는 마이크로바이오타는 식물의 복잡한 분자들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질소와 다양한 비타민 등으로 양분을 보충해준다. 프로피오니박테리움 아크네스는 피지를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차단막 역할을 하는 휘발성 지방산을 생성해 피부를 보호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리 주변의 생태학적 과정들이 상당 부분 미생물로 구축돼 있음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생명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상호작용들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전체 분량이 500쪽이 넘는 데다 생소한 용어도 자주 등장해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이를 고려해 저자는 장마다 도입부를 따로 서술해 내용을 안내하고 마지막 부분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이라는 소제목으로 핵심 내용을 정리해준다. “각 장이 상당히 독립적으로 기획됐다”는 저자의 소개처럼 각 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것은 아니기에 흥미를 끄는 목록을 골라 먼저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520쪽, 2만5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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