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경축사 하루 만에…北, 미사일 쏘며 막말조롱

입력 2019-08-16 17:45   수정 2019-08-17 03:43

강원도 통천서 2발 발사
문 대통령 직접 겨냥해
"뻔뻔…세게 웃기는 사람"



[ 이정호/이미아 기자 ]
북한이 16일 강원 통천 북쪽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두 발을 쐈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담화문에서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평화경제 구상을 ‘망발’이라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을 향해선 “뻔뻔스러운 사람” “세게 웃기는 사람”이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북한은 이날 오전 8시 1분과 16분께 두 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미사일 고도가 약 30㎞, 비행거리는 약 230㎞, 최대 속도는 마하 6.1 이상으로 분석했다. 통천군 일대는 군사분계선(MDL)에서 북쪽으로 50㎞가량 떨어진 곳이다. MDL에 근접해 미사일 도발을 하며 군사적 긴장을 높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실시에 반발하며 지난달 25일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 발을 쏜 것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23일간 여섯 번의 미사일 도발을 했다.

미사일 도발에 앞서 조국평화통일위는 이날 새벽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맹비난하는 대변인 담화를 내고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협박했다. 2050년 국민소득 7만~8만달러 달성 등 경축사에 담긴 장밋빛 통일 전망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웃는다)할 노릇”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고, “아랫사람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내리읽는 남조선 당국자가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이라고 조롱했다. 청와대는 이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군사 안보 태세를 점검했다.

"뻔뻔한 사람" 막말 퍼붓고 미사일 쏜 北…"南과 마주앉지 않겠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16일 내놓은 대변인 담화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직설적인 비난 일색이었다. 담화문에는 야당이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비판하며 내놓은 ‘허무한 경축사’ ‘정신구호의 나열’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대화를 촉구하는 우리 정부를 향해서는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고 협박했다.

광복절 경축사 ‘쥐’에 비유

조평통은 담화에서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라 칭하면서 온갖 멸시적 표현을 썼다.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 “겁에 잔뜩 질린 것이 역력하다”는 등의 원색적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선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태산이 큰 소리로 울렸는데 고작 쥐 한 마리가 뛰어나오다)’이라고 비하했다. 조평통은 “섬나라 족속들에게 당하는 수모를 씻기 위한 똑똑한 대책이나 타들어 가는 경제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방안도 없이 말재간만 부렸다”고 주장했다. 또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국방중기계획에 대해 “이 모든 것이 우리를 괴멸시키자는 데 목적이 있다”며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북남대화의 동력이 상실된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자의 자행의 산물이며 자업자득”이라고 강변했다.

‘南 못 믿는다’는 김정은의 심리

전문가들은 지난 2월 말 미·북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김정은이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통미봉남(通美封南,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협상) 전략을 강화한 것으로 분석한다. “남한과 대화해 봤자 얻을 게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는 것이다.

실제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의사를 밝혔다. 우리 정부로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과 연계된 문제라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공수표’보다 ‘냉정한 협상 이익’을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를 선호하게 됐을 것이라고 대북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은 협상을 하거나 뭔가 요구할 때 반드시 구체적 단어를 쓴다”며 “김정은으로선 이번 광복절 경축사가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선 ‘새로운 길’을 내세우며 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 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진 남북한 사이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 같다”며 “북한은 계속 우리 정부에 대북제재 완화 협조와 미국에 거리 두기를 요구할 텐데 둘 다 실제 이행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번 담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요구사항을 더욱 확실히 밝히고, 실무협상 재개 전 기선제압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남 비방을 통해 내부 결속력을 강화하고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향후 북한이 동해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소규모 무력시위를 벌이는 등 지속적으로 우리 정부를 압박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 “北, 도 넘은 무례한 행위”

통일부는 이날 “북측이 우리를 비난한 것을 보면 당국의 공식 입장 표명이라 보기에는 도를 넘는 무례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오후 백그라운드 브리핑(익명 보도를 전제로 한 설명)을 자처해 “북한이 우리 민족 최대 경사인 광복절 다음 날 우리에 대해 험담을 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통일부 측에서 이같이 직접 유감 표명을 한 건 그동안 정부가 북한의 대남 비난에 대해 대응을 자제한 걸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하지만 청와대나 통일부의 공식 브리핑이 아니라 백그라운드 브리핑 형식을 취한 건 수위 조절을 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불만이 있다면 역시 대화의 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할 일’이라는 어제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이미아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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