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대만 놓고 美·中 갈등 격화
[ 강동균 기자 ]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18일 빅토리아공원에서 또다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170여만 명의 시민은 ‘자유 홍콩’과 ‘반(反)중국’을 외치며 센트럴 차터가든까지 3.9㎞ 가두 시위를 벌였다. 홍콩 경찰이 폭력 시위를 이유로 행진을 불허해 충돌이 우려됐지만 시위대는 평화 시위를 벌여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날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됐던 중국군의 무력 투입은 없었다. 중국 정부는 홍콩에서 10분 거리인 광둥성 선전의 체육관에 인민해방군 소속 무장경찰 1만2000여 명과 장갑차 50대, 기동 차량 200대, 헬기 5대를 대기시키며 시위대에 무력 진압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재야단체연합 민간인권전선은 경찰의 폭력 중단과 5대 요구 사항을 내걸며 평화적 시위를 강조했다. 5대 요구는 △송환법 완전 폐지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경찰 행태에 관한 독립적 조사 △보통선거 실시다. 민간인권전선은 이날 시위에 170여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날 집회는 ‘유수(流水·물처럼 흐르는) 식’으로 진행됐다. 집회가 열린 빅토리아공원의 수용 인원이 10만 명에 불과한 점을 고려한 방식이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빅토리아공원에 15분만 머물고 빠져나간 뒤 코즈웨이베이, 완차이, 애드머럴티, 센트럴 등을 행진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홍콩 정부는 3000여 명의 경찰과 100여 명의 폭동 진압 경찰을 투입했지만, 최근 시위 강경 진압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시위대와의 충돌은 최대한 피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시위는 송환법 반대 주말 시위가 계속된 지 4주 만에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6월 9일 시작된 주말 시위는 지난달부터 일부 시위대가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지난 11일 시위에선 한 여성이 경찰의 빅밴건(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에 맞아 오른쪽 눈이 실명할 위기에 처하는 등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했고 149명이 체포됐다.
이에 분노한 시위대가 12일부터 이틀 연속 홍콩국제공항 점거 시위에 나서 홍콩공항이 처음으로 폐쇄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중국 정부가 홍콩 사태에 무력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이날 중국군은 개입하지 않았지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위대 측이 홍콩에 주둔하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일부가 시위 진압에 이미 투입됐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5일 시위 진압에 나선 홍콩 경찰에서 광둥어가 아니라 중국 표준어를 하는 무장경찰 일부가 포착됐고 시위 현장에서 홍콩 주둔군 번호판을 단 앰뷸런스가 목격됐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또 홍콩 일부 경찰의 진압 자세가 중국 군대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홍콩과 대만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도 격화하고 있다.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이날 미국을 겨냥해 “홍콩은 중국의 내정 문제”라며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전인대 외사위원회 관계자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일부 미국 의원이 홍콩 시위대를 두둔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앞서 미 국무부는 16일 대만에 80억달러(약 9조7000억원) 규모의 F-16V 전투기 판매 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의회에 비공식 통보했다. 중국은 미국 정부의 결정을 비난하며 실제 판매를 강행하면 보복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편 홍콩 시위 사태가 중국의 무력 개입 등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으면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충격이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와 KOTRA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홍콩 무역액은 480억달러로, 이 중 수출이 460억달러(약 56조원)에 달했다. 수출액 기준으로 중국, 미국, 베트남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다. 금융권 일각에선 홍콩 시위가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블랙 스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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