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창단해 ‘야구 명문’으로 우뚝 선 서울 덕수고(옛 덕수상고) 야구부의 화려한 성적이다. 특히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청룡기 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한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고교야구의 영원한 후승 후보인 덕수고 야구부가 최근 존폐 기로에 서면서 때아닌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교육청이 최근 확정한 ‘덕수고 이전·재배치 계획’에 따라 서울 행당동에 있는 덕수고가 2022년부터 서울 위례신도시 거여동으로 이전할 계획인데, 거여동 부지는 야구장을 짓기엔 턱없이 작기 때문이다. ‘야구장 없는 야구부’가 현실화될 조짐에 일부 동문들은 “40년 전통의 명문 야구부가 사라지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전 계획 철회를 주장하기도 했다.
◆거여동 부지는 現 행당동의 1/3
19일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2022학년도부터 덕수고가 들어설 거여동 학교 부지 면적은 1만1801㎡다. 서울 행당동에 있는 기존의 덕수고 부지(3만5128㎡)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행당동 부지 가운데 야구장 등 옥외 체육시설을 의미하는 ‘체육장’ 면적은 1만4368㎡다. 거여동 전체 부지 면적이 행당동에 있는 체육장 넓이보다도 작은 셈이다. 사실상 기본적인 학교 시설을 짓고 나면 야구장은 커녕 운동장이 들어설 공간도 부족하다.
서울에 야구부를 두고 있는 다른 학교들과 비교해 봐도 덕수고 거여동 부지는 야구장을 두기엔 턱없이 작다. 서울 청파동에 있는 선린인터넷고(옛 선린상업고)는 학교 면적이 4만5473㎡다. 체육장 넓이만 3만8599㎡에 달한다. 서울 경동고의 경우 체육장 2만4900㎡를 포함해 전체 부지 면적이 3만8199㎡다. 전체 면적이 1만1801㎡에 불과한 덕수고 거여동 부지는 현실적으로 야구를 연습할 야외 공간이 들어설 수 없는 것이다.
◆“동문이 나설 수밖에”
야구부의 훈련 공간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덕수고 동문들이 발 벗고 나섰다. 김동수 덕수고 총동창회장(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총동창회 홈페이지에 “총동창회는 모교(덕수고)가 야구명문으로서 계속 번성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며 동창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일부 동창들은 덕수고의 상징과도 같은 야구부가 없어지면 안 된다며 학교와 교육 당국에 거세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덕수고 동문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거여동 학교부지에 현대적인 실내 야구 훈련시설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인 타격 연습과 투구 훈련은 실내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비 연습을 위해 동문들은 인근 야구장까지 물색해 주기적인 대여를 지원할 계획이다.
덕수고 선배들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 것은 덕수고 동문들에겐 야구부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재연 대법관 등을 배출해낼 정도로 당대 최고 명문이었던 덕수상고는 1978년까지는 현재의 행당동이 아닌 동대문 인근에 있었다. 바로 건너편에 있었던 동대문 운동장에서 매일 야구 응원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학생들의 야구에 대한 열망은 컸지만 학교가 좁아 야구부를 두지는 못했다. 경기고, 휘문고 등 야구부를 두었던 당시 명문고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랬던 덕수고가 1978년 현 행당동으로 이전하면서 넓은 부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자 곧바로 야구부를 창단했다. 1970년대에 덕수고를 졸업한 한 동창은 “야구부는 덕수고 선후배를 한 데에 뭉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구심점이었다”라며 “거여동으로 이전하더라도 동문들의 전폭적인 지원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덕수 선배들의 ‘명문’ 자존심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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