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충남 태안발전소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당시 24세)씨 사망사고는 '위험의 외주화' 뿐 아니라 원·하청의 책임 회피로 설비 개선이 방치된 데 따른 것으로 조사됐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용균 씨 사망사고 진상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김지형 위원장은 "(석탄화력발전 사업의) 원청 및 하청은 모두 안전 비용 지출이나 안전 시스템 구축에는 무관심했다"고 지적했다.
태안발전소에 대한 종합안전보건진단 결과,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김용균 씨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10개월 전인 작년 2월 하청인 한국발전기술에 공문을 보냈다. 태안발전소의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설비 개선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김 씨가 한국발전기술에 취업하기 전이다.
그러나 컨베이어 설비는 김 씨의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개선되지 않았다. 설비 개선이 무시된 것은 원·하청의 '책임 회피 구조' 때문이라는 게 특조위의 판단이다.
발전사는 하청 노동자의 작업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휘·감독을 했지만, 자사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안전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협력사는 자사 설비가 아닌 컨베이어에 대해 권한이 없어 문제를 방치하는 구조였다.
김 위원장은 "위험은 외주화됐을 뿐 아니라 외주화로 위험이 더욱 확대되는 방향으로 구조화돼 노동 안전보건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 상황이 일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원·하청 구조에선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다양한 요소가 발견됐다. 태안발전소를 포함해 원·하청 구조가 자리 잡은 석탄화력발전소에선 발전소 회 찌꺼기 처리장의 1급 발암물질인 '결정형 유리규산' 농도는 0.408㎎/㎥로, 노동부 기준(0.05㎎/㎥)을 크게 뛰어넘었다. 특조위가 지난 6월 측정한 결과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원·하청 관계가 직접적인 안전 위험 요인으로 작용해 사고 및 중독의 핵심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강조했다.
특조위에 따르면 국내 전력산업은 한국전력공사가 발전, 송·배전, 전력 판매 등 전체 사업을 통합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쳐 2000년대 들어 발전 5개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의 6개 자회사로 분할됐고, 정비를 포함한 일부 사업이 민영화됐다.
민영화는 경쟁 도입과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이뤄졌지만, 하청 업체 노동자의 미숙련, 저임금, 불안정 고용을 고착화고 하청업체의 배만 불렸다고 특조위는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발전사가 협력업체에 지급하는 도급 비용 단가는 계속 상승했다"며 "하청업체는 노무비를 비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저비용 방식에 편승해 과도한 이윤을 취득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특조위는 김용균 씨와 같은 사망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전력산업의 원·하청 구조를 대폭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발전사의 경상 정비 및 연료·환경 설비 운전 업무의 민영화와 외주화를 철회해야 한다"며 "운전 업무는 발전 5개사가 해당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 운영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전력산업의 수직 통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되 가장 먼저 발전 사업 분야의 통합을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특조위는 지난 4월 국무총리 소속 기구로 출범, 4개월여 동안 김용균 씨 사망사고 진상조사를 했다. 특조위의 활동 기간은 9월 말까지다. 특조위는 활동 기간이 끝난 뒤에도 정부가 권고 사항을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는 지를 살피는 '점검 회의'를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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