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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해상권 잡고 후삼국 통일전쟁 승리한 왕건, 끝까지 저항한 적 품은 포용의 리더십 빛나 2021-11-15 09:01:49
답례를 받았다. 북쪽의 후량·후당·후진 등 화북의 나라들에 사신을 자주 파견했고, 특히 후당은 925년을 시발로 짧은 기간에 8번이나 보냈을 정도였다. 시대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는 해양의 중요성과 해양력 강화가 국가 발전의 토대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이후 고려는 해양활동 능력을 바탕으로 군사적인 활동은...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신라 분열 속 후백제와 고려의 '바다 쟁탈전'…견훤의 후백제는 국제관계에 해양능력 활용 2021-11-08 09:00:26
들어와 중국은 남쪽의 오월국, 북쪽의 후당, 거란 등으로 분열돼 적대 관계를 맺었고, 후삼국 또한 적대 관계인 상황 속에서 국제 관계는 매우 복잡해졌다. 각 국가들은 해양을 이용해 긴박한 외교와 무역을 벌였고, 심지어는 해상 제어와 봉쇄까지 실행했다. 후백제는 896년에 절강성 지역인 오월국에 사신을 보냈고,...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口禍之門 (구화지문) 2021-10-25 09:00:46
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당나라가 망한 뒤 후당 때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의 《전당서(全唐書)》에 나오는 말이다. 말에 관한 글을 모은 설시(舌詩)에 실려 있다. 구화지문(口禍之門)은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란 뜻이다. 화(禍)의 근원이 바로 입이다. 재앙이 입으로부터 나오고 입으로부터 들어간다 하여 옛...
200년간 이어진 발해의 나라 되찾기 활동, 후발해국·정안국·을야국·대원국 등 세웠지만… 2021-07-12 09:01:02
자구책을 강구했을까? 신흥국인 후량과 후당에 몇 번이나 왕자를 파견했다. 신라 등(‘新羅諸國’)에 구원을 요청하는(《거란국지》) 등 타국과 우호관계를 모색했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자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왕건의 선조인 호경(虎景)은 백두산에서 내려온 사냥꾼으로서, 성골(聖骨) 장군으로 불렸는데,...
박병석 국회의장 "코로나 극복 경제특위 만들자" 2020-07-16 17:36:34
박 의장은 “선국후당(先國後黨)의 자세로 ‘K민주주의’를 이뤄가자”는 제안도 했다. 그는 “국민 먼저, 국익 먼저, 국회가 먼저”라며 “당에서의 활동도, 지역구 활동도 그다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장은 “국회 스스로 윤리적 기준을 높이 세우는 일도 미룰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국회의원의 윤리적...
국회 47일만에 개원식…박병석 "선국후당으로 K-민주주의 만들자" 2020-07-16 15:57:29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내는 `용광로 국회`가 돼야 한다"고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소속 정당이나 지역구보다 국민과 국익, 국회를 먼저 생각하자는 "`선국후당`의 자세로 K-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자"고 주문했다. 한편 미래통합당 등 일부 야당들의 불참 속에 국회는 오전 본회의를 열고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무역국가로 성공한 고려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0-07-05 08:00:09
산둥반도 북부의 등주(펑라이)에서 후당과 무역을 벌였다. 정국이 안정된 11세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분열시대를 통일한 송나라는 운하도시인 동경(카이펑)을 수도로 삼고, 상업과 무역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거란을 의식하고 고려의 편의를 위해 국가항구를 산둥반도의 남단인 판교진(지금 산둥의 고현)으로...
미래를 내다본 통일 군주 왕건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0-06-28 08:27:01
후당·후진 등 화북의 나라들에게 사신을 자주 파견했고, 특히 후당은 925년을 시발로 짧은 기간에 8번이나 보냈을 정도였다. 후백제의 해상방해를 극복하며 황해중부 횡단항로를 사용한 해양능력 때문에 가능했다. 시대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는 해양의 중요성과 해양력의 강화가 국가발전의 토대라는 사실을 확신한...
후삼국 통일전쟁 뛰어든 후백제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0-06-21 08:00:01
후당, 거란 등으로 분열돼 적대관계를 맺었고, 후삼국 또한 적대관계인 상황 속에서 국제관계는 매우 복잡해졌다. 각 국가들은 해양을 이용해 긴박한 외교와 무역을 벌였고, 심지어는 해상제어와 봉쇄까지 실행했다. 후백제는 896년에 절강성 지역인 오월국에 사신을 보냈고, 909년에도 사신을 파견했지만, 광주의 염해현...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거란 공격에 한 달 못 버틴 발해…復國운동 200년간 이어져 2020-04-17 17:04:58
자구책을 강구했을까? 신흥국인 후량과 후당에 몇 번이나 왕자를 파견했다. 신라 등(‘新羅諸國’)에 구원을 요청하는(《거란국지》) 등 타국과 우호관계를 모색했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자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왕건의 선조인 호경(虎景)은 백두산에서 내려온 사냥꾼으로서, 성골(聖骨) 장군으로 불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