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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열이 목숨, 무엇으로 보상하나요"…추모객의 독백 2017-06-08 13:56:46
앞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쓰러졌다. 이를 지켜본 시민이 분노했고 '넥타이 부대'가 조직돼 회사원까지 도로로 나서는 등 6월 민주항쟁이 전국민적 민주화운동으로 번진 도화선이 됐다. 이 열사는 26일 뒤인 7월 5일 숨졌다. h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열이를 살려내라' 그린 최병수작가 "이한열 모친께 마음 빚" 2017-06-08 07:30:01
최 작가는 전국에 민주화 열기가 불타오르던 1987년 6월을 회상하며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해 6월 9일 시위에 나선 연세대 2학년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당시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 씨가 그 장면을 포착했다. 동료의 팔에 허리를 잡힌 채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이 열사의 모습이 고스란히 잡혔다....
"中, 톈안먼사태 희생자 추모 활동가 14명 구금" 2017-06-07 21:41:00
사망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100만여 명이 운집하는 대규모 민주화 요구 시위로 확대되자 탱크와 군인을 동원해 톈안먼 광장의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당국은 이후 톈안먼 사태 기념일을 전후해 인터넷 검열과 인권활동가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harris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6·10항쟁 30주년] 이한열 사진전…모친 "도망가랑께"(종합)· 2017-06-07 19:36:38
속 아들을 만지며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이 열사를 기리는 전시회가 그의 30주기를 맞은 올해 더욱 풍성하게 열렸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7일 오후 열사 모교인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의 연세대박물관에서 '2017이 1987에게'라는 주제로 30주기 특별기획전을...
[6·10항쟁 30주년] 사진·호외에 깃든 이한열 숨결 2017-06-07 16:00:09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이한열 열사를 기리는 전시회는 그의 30주기를 맞은 올해 더욱 풍성하게 열린다. 7일 이한열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017이 1987에게'라는 주제로 30주기 특별기획전이 열사 모교인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의 연세대박물관에서 사업회 주최로 막을 올린다....
[6·10항쟁 30주년] "6월항쟁이 6·29 이끌었다는 데 이견 불가" 2017-06-07 16:00:07
예컨대 당시 전두환 정권은 경찰력만으로 시위를 진압할 수 없었던 상황인 데다 광주민주화운동의 경험으로 군대를 동원하기도 어려웠던 상황이라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앞서 전두환 군사정권을 '승인'한 미국 역시 이 과정에서 한국 내 반미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두환 정권에 평화적 방식으로 정권을...
[6·10항쟁 30주년] 넥타이부대가 이끈 시민혁명…촛불집회 모태 2017-06-07 16:00:01
◇ 이한열 사망으로 민주화 열기 고조…직선제 개헌 이뤄내 6·10 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또 하나의 불씨가 여론에 불을 지폈다. 학교 앞 시위에 참가한 연세대생 이한열씨가 경찰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진 사실이 생생한 사진과 함께 언론에 보도됐다. 이씨는 한 달 후인 7월5일 사망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역사의 물줄기 바꾼 6월항쟁…KBS스페셜 '시민의 탄생' 2017-06-07 15:38:33
정권의 끊임없는 민주화 세력 탄압으로 모든 것이 억압된 시대였다. 급기야 1987년 4월 13일에는 직선제 개헌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금하겠다는 호헌조치로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던 시민에 대한 억압 수위를 한층 높였다. 그리고 1987년 6월, 한 청년이 죽었다. 대학생 이한열의 죽음은 박종철 고문치사...
[오늘의 이한열을 사는 사람]⑥ "낫 품고 운구했다"…장숙희씨 2017-06-07 10:00:07
여전히 팽배했다. 실제 경찰은 장례식을 전후한 시위에서도 거리낌 없이 최루탄을 쐈다. 경찰은 시신 부검영장(압수수색 검증영장)도 발부받은 상황이었다. 장씨와 이 열사는 묘한 인연으로 현대사의 한 지점에서 마주쳤다. 사실 그는 1987년 6월 9일까지 '이한열'이라는 이름도 몰랐다. 얄궂게도 이 열사가 쓰러진...
[오늘의 이한열을 사는 사람]⑤ '온몸으로 열사보낸' 이애주교수 2017-06-07 10:00:06
교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7년 6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연우무대' 개관 공연에서 처음 선보이고서 계속 춰온 춤이다. 이 교수는 "바람맞이는 '씨', '물', '불', '꽃' 이렇게 '씨물불꽃'의 춤이다. 마치 생명의 한 부분처럼 싹이 나고 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