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요뉴스 한국경제TV에서 선정한 지난 주요뉴스 뉴스썸 한국경제TV 웹사이트에서 접속자들이 많이 본 뉴스 한국경제TV 기사만 onoff
[책마을] "군량미 풀어라"… 2000년 전 실행된 양적완화 2018-09-27 18:22:07
제시했다. 그는 유비에게 창고 안에 있는 군량미를 풀어 민간의 금은보화를 사라고 조언했다. 그다음 100전에 해당하는 대전을 주조하게 한 뒤 다시 곡식을 사들였다. 이를 통해 유비는 정치적으로 부하들의 신임을 얻고 재정문제도 해결했다.양적완화 정책은 무분별하게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이 유동성이 ...
백제 유민의 '한'기리는 보성동로제 22일 개최 2018-09-18 14:40:55
백제 유민들은 당시 조양포구(현 조성면 대전마을)에서 일본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조성면은 조선 시대에는 전라도 4진(목포·조양·옥구·홍양) 가운데 하나로,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임시 통제영을 설치하고 군량미를 확보했던 지역이다. 간척지에서 생산된 기름진 쌀과 전국 최대의 참다래 생산지로 알려졌다....
조선 시대 평양은 어땠을까…곳곳이 명소, 평안감사는 '꽃보직' 2018-08-15 08:29:10
않고 관향곡(管餉穀·관향사가 관장하는 군량미)이라 하여 지방에 비축해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안감사는 다른 곳보다 훨씬 넉넉한 비용을 쓸 수 있었다. 즉, 평양은 전국 최고 기생이 몰려올 정도로 권력과 돈이 모이는 부자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 안동에 산 선인들 기록에는 평양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노적봉 전술 421년만 재현" 목포서 7일 이순신수군문화축제 2018-04-03 10:52:16
군량미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고 주민들은 강강술래를 하며 병력이 많아 보이도록 위장전술을 펼쳤다. 목포시는 노적봉 전체를 볏짚으로 쌓아 당시 모습을 재현하고 목포시립예술단이 춤과 노래, 연극 공연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릴 예정이다. 노적(露積)이란 '한꺼번에 많은 곡식을 거두어 마당이나 넓은...
[여행의 향기] 일제 유산이 아직 고스란히… 목포 옛 도심은 '뼈아픈 역사의 거울' 2018-03-25 15:22:00
했는데 불과 열흘 만에 1만 석의 군량미를 모았다. 단기간에 그토록 많은 군량미를 모을 수 있었던 것도 영산강 수로로 이어지는 고하도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다. 현재의 무기상들처럼 과거에도 상인들에게는 전쟁이 돈벌이의 기회일 뿐이었다. 상인들에게 통행세로 받은 곡식이 있으니 전함도 만들고 군사들도 모았다....
'목포의 눈물' 애잔한 포구… 영욕의 500년 속으로 '시간 여행' 2018-03-04 15:19:30
불러 모으고 군량미를 비축했던 목포의 섬 고하도가 거기 있다. 근대도시로 알려진 목포지만 실상 목포의 역사는 근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개항장 목포의 근대성에만 집중하다 보니 사람들은 목포의 유장한 역사를 잊곤 한다.지금은 ktx 열차를 타면 서울에서 목포까지 2시간 남짓이면 족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런데도...
[정갑영 칼럼] '밸리 포지의 비극'이 주는 교훈 2018-02-18 18:35:15
법을 제정했다. 전시에 아군의 군량미를 저렴한 가격으로 획득하자는 취지는 얼마나 당연한가.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낮은 공시가격에 불만을 품은 농부들은 식량을 숨기고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면서 적군에 금을 받고 고가로 팔아넘겼다. 식량은 시장에서 사라지고, 규제 대상이 아니던 수입품 가격까지 폭등했다....
[연합이매진] 뭍과 하나 된 남도 끝자락의 섬·섬·섬 2018-02-09 08:01:26
군량미를 해결할 수 있었고, 갯벌이 발달해 소금을 만들 수 있었다. 충무사 사당에는 이충무공이 직접 만들고 실전에 활용했다는 전진도첩(戰陣圖帖) 모사본이 전시돼 있고, 사당 왼쪽에는 숙종 39년(1713)에 건립한 관왕묘 묘비(廟碑)가 남아 있다. 충무사 앞 '소나무 사이로 달이 비춘다'는 월송대에는 마지막...
상륙작전 핵심전력 신형 상륙함 '노적봉함' 첫 공개 2017-11-02 11:00:10
군량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게 해 왜군의 접근을 막은 것으로 전해진다. 노적봉 맞은편에 있는 고하도는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이 108일 동안 머무르며 전력을 정비한 곳이다. 노적봉함의 이름은 충무공의 호국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방사청의 설명이다. 진수식을 마친 노적봉함은 인수시험평가를...
'잊지 말고 돌아보자'…역사관광지로 변모한 일제강점기 상흔 2017-08-12 07:33:01
활용됐다. 이때부터 남산 동굴은 군량미와 항공유로 쓰이는 소나무기름(송유)를 비축하는 창고로 사용됐다. 일본은 현재 신정동과 옥동 주민들의 식량을 수탈, 소달구지로 실어와 동굴에 채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민을 강제로 동원해 노역도 시켰다. 인근 마을 학생들은 하굣길에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남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