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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OAD] 수도권 전철의 재발견 - 9호선 선정릉역 여행 2015-05-18 19:25:00
‘경국대전’을 편찬하는 등의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다. 정현왕후는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가 물러난 후 왕후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선·정릉 입구에서 왼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 홍살문과 정자각의 뒤로 다시 또 두 갈래로 길이 나뉜다. 이는 한 구역 내 다른 언덕에 따로 봉안된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으로 각각 향하는...
'통일신라, 종합과세 시행했다'…조세박물관 특별전 개최 2014-12-10 12:00:21
호구 수를 기록한 신라장적, 조선시대 경국대전 등에서 세금 부과의 근거가 되는 부분을 발췌해 전시한다. 광개토대왕비에서는 '왕릉을 지키는 인원을 연호(烟戶, 공동취사 가족단위)마다1명을 배정'했다는 내용을 통해 삼국시대 공평과세 노력을 추론할 수 있다. 사람과 가축이 결합된 노동력과 토지...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19) 조선시대는 상품화폐의 시대 2014-06-27 17:23:49
『경국대전』은 저화와 포화(布貨)를 국가의 공식 화폐로 삼고 품질과 규격을 정해놓았다. 포화의 1필은 폭 8촌(37.4㎝), 길이 35척(16.35m)의 5승 품질이었다(1승은 80가닥). 16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규정을 전혀 지키지 않아 직물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추포가 화폐로 사용되었다. 매우 성기고 거친 포라는 뜻인데, 아무...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16) 조선시대 노비의 수요와 공급 2014-06-09 17:43:19
『경국대전』(1485년)에 저화(楮貨·종이 돈) 4000장(쌀 20석, 면포 40필)이었는데 당시 말 한 마리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속대전』(續大典, 1746년)에서도 공정가격은 100냥(쌀 20~30석)이었으므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18세기에 노비가격은 폭락하여 공정가격의 1/10에 불과한 10냥 전후에 불과하게 되었다....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15) 양반, 조선왕조의 특권신분 2014-05-30 19:08:59
수는 『경국대전』(1485년 반포)을 기준으로 서울과 지방의 문·무·잡직을 통틀어 5000~6000여 직 정도였는데, 그중에서도 핵심 요직은 100여 개의 당상관(堂上官)을 포함하여 300자리 정도였다.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2013년도 공무원 최종 합격자 수는 5급 353명, 7급 628명, 9급 2618명 합계...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13) 조선시대의 인구 -장기 변동 2014-05-16 18:23:46
가호에서는 『경국대전』의 규정(戶口式)에 따라서 가족과 노비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를 소속 군현의 수령에게 제출하였다.각 군현에서는 이에 기초하여 호적대장을 3부 작성하여 한 부는 해당 군현에서 보관하고 다른 2부는 감영과 호조로 보냈는데, 이로부터 전국의 호구 총수가 집계되었다.이 호구...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11) 중세의 토지는 누구 소유였는가 2014-04-25 18:32:45
따라서 전일적인 통치체제로 변화되었다.이 과정에서 국가는 점차 민간의 토지소유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조세를 수취하는 국가, 조세국가(tax state)로 변모해갔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경국대전》에서는 토지매매를 관에 공증을 받는제도도 갖추었으며 토지매매문서를 주고받아 적어도 안면이 있는 지역사회에서의...
[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린치핀, 그리운 사람 2014-03-13 20:34:04
쓸쓸함 이 칼럼을 통해 자주 강조했지만 조선시대 경국대전에 따르면 행정가의 정년은 70세였다. 육체노동자는 66세, 장인(匠人)은 60세였다. 평균수명 40대 시절에 조상들에겐 정년이란 사실상 없었다. 대책 없이 떠나는 듯한 선배들을 보면서 후배들은 불안해진다. 특히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중장년들은 더욱 그렇다....
현행 주소체계가 `일제 잔재`? 도로명주소 탄력받나? 2013-12-05 16:02:59
건물(집)을 기반으로 했다. 조선의 헌법에 해당하는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의 주소체계는 통호제였다. 5개의 집을 하나의 통(統)으로 묶고 각 집마다 호(號)를 부여한 것이다. 예를 들면 서울에 있던 옛 집 주소는 ‘한성부 찬성방 우교계 5통 3호’ 등으로 표기했다. 특히 지번 주소는 건물이 위치한 순서에 따라 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