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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밖으로 몰려간 군인들 [더 라이프이스트-성문 밖 첫 동네, 충정로 이야기] 2024-01-12 17:07:02
남대문 시장 수입상가 자리에는 대동미를 보관해 두는 미곡 창고 선혜청이 있었다. 이곳의 당상관을 맡고 있던 민겸호, 전임 당상관이자 현 경기도 관찰사인 김보현이 봉급 연체를 초래한 원흉으로 지목된다. 드디어 전라도에서 세곡선이 도착했다. 선혜청에서는 세곡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훈련도감 군인들에게 밀린...
홍남기, 은닉 재산 찾은 세무공무원에게 '자' 선물한 까닭은 2021-03-22 16:58:18
지니고 다녔던 물건이다. 당시 대동미(세금) 징수 시 기준됫박보다 큰 됫박을, 구휼미(구호) 지급 시 기준됫박보다 작은 됫박을 사용한 탐관오리를 찾아내 엄벌하기 위한 것이었다. 홍 부총리는 "공정, 공평, 형평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척도로,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워들이는 국세청, 지방자치단체 세무공무원이 지녀야...
홍남기 "LH 직원 땅투기 의혹 참담해…무관용 대응" 2021-03-03 20:12:10
다닌 것은 마패만이 아니었다. 백성들로부터 대동미 세금을 거둘 때 큰 됫박을 사용하거나, 구휼미를 나누어줄 때 작은 됫박을 사용한 부패관리를 찾아내기 위해 눈금이 있는 청동자인 유척(鍮尺)도 항상 지녔다"며 "이는 지금도 공정과 형평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재부 직원들에게 있어 공정과 형평 정신은 ...
홍남기 "LH 땅투기 의혹에 분노…무관용으로 엄정 대응" 2021-03-03 20:06:14
것은 마패만이 아니었다. 백성들로부터 대동미 세금을 거둘 때 큰 됫박을 사용하거나, 구휼미를 나누어줄 때 작은 됫박을 사용한 부패관리를 찾아내기 위해 눈금이 있는 청동자인 유척(鍮尺)도 항상 지녔다"며 "이는 지금도 공정과 형평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기재부 직원들에게 있어 공정과 형평 정신은...
홍남기 "LH땅투기 의혹 등 분노…10일 부동산회의서 논의" 2021-03-03 19:52:55
다닌 것은 마패만이 아니었다. 백성들로부터 대동미 세금을 거둘 때 큰 됫박을 사용하거나, 구휼미를 나누어줄 때 작은 됫박을 사용한 부패관리를 찾아내기 위해 눈금이 있는 청동자인 유척(鍮尺)도 항상 지녔다"며 "이는 지금도 공정과 형평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기재부 직원들에게 있어 공정과 형평 정신...
[쉿! 우리동네] 광해 숨 거둔 날 유배지 제주선 가뭄에도 비오더라 2018-05-26 11:00:02
대동법 시행에 따라 소득을 많이 올리는 지주가 대동미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냈다. 소작인 등 가난한 농민들은 세금 부담에서 벗어나게 됐다. 또 중국을 놓고 패권을 다투던 후금(청나라)과 명나라 사이의 중립 외교를 펼쳐 전쟁이 휘말리지 않도록 실리를 따졌다.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편찬하도록 해...
[카메라뉴스] 홍천 동창마을 '겨릿소가 써레질' 2017-05-03 11:15:19
밭갈이를 하는 곳도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써레질하는 모습을 통해 옛 농경문화에 향취와 전통 산촌문화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내촌면 물걸리인 동창마을은 조선시대 중종 때 대동미 창고가 있던 곳으로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펼쳐 팔열각과 기미만세공원이 있는 애국마을이다. (글 = 이상학 기자,...
서울 '남대문 시장' 국제 관광지로 거듭 난다 2015-06-25 15:32:00
1414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1608년에는 대동미 등의 출납을 맡은 선혜청이 남창동에 설치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특산물 등을 매매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시전이 들어서면서 상업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다 1911년 내무대신 송병준이 조선농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1922년 경영권이 일본인에게 넘...
[Focus] 남대문시장 600년…대한민국 역사가 숨어있다 2014-10-24 18:19:48
시장이 운영됐다. 1608년(선조 41) 들어서 대동미(大同米)·포(布)·전(錢)의 출납을 맡아보는 선혜청이 지금의 남창동에 설치되면서 지방 특산물 등도 매매됐다.1897년에는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상거래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당시 과일가게 3곳, 쌀가게 14곳, 어물전 36곳, 담배가게 22곳 등 85개...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28) 재정능력 함정과 갑오개혁 2014-09-26 17:51:58
수입은 전세뿐이었고 대동미는 선혜청에서, 군포는 병조에서 관할하고 있었다. 관청마다 저마다 크고 작은 재원을 보유하는 분산적인 재정구조를 폐지하는 대신 탁지아문(1895년 4월에 탁지부로 개칭)으로 하여금 재정운영을 총괄토록 하였던 것이다. 국가재정과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왕실재정은 궁내부를 설치하여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