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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실학자 홍대용의 '혼천시계' 260년만에 복원 2022-12-28 12:00:13
복원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혼천시계는 조선 후기 북학파 천문학자 홍대용과 호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과학자 나경적이 1762년에 만든 기계식 천문시계로, 홍대용의 저서 '담헌서(湛軒書)'와 '농수각의기지(籠水閣儀器志)'에 통천의라는 이름으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다. 혼천시계는 물의 힘(수격식) 또는...
미완의 혁명…정당한 평가 받지 못한 갑신정변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1-04-04 08:09:41
관철하려 했을까. 개화파는 북학파의 전통을 계승했지만, 1876년 직후부터 일본에 파견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일본은 개항 후 30년 만에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에 성공한 근대국가였다.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후 입헌체제를 구상했고, 1870년부터 평민도 성을 허용했다. 1871년에 신분 해방령을 선포했고, 1872년에는...
붕괴하던 조선에 등장한 사상운동, 북학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1-03-07 08:34:08
박지원연구』). 북학파를 완성한 박제가는 ‘서얼’ 출신으로 박지원의 제자였고, 명저인 『북학의』를 지어 정조에게 바쳤다. 네 번이나 청나라를 방문하면서 청나라의 문물과 서양 사상, 기술력을 과감하게 수용해 산업을 발전시키고 상업 유통과 무역, 생활의 편리를 주장했다. 심지어는 벽돌을 생산해 주거환경을...
사명감 갖고 오랑캐의 나라 찾은 사람들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1-02-28 08:00:12
북학파’라는 세력으로 조선후기의 사회개혁과 실학의 초기 주체로 변신했다. 이들은 일단 규모가 컸다. 1회에 30인의 정식인원과 수행원을 포함해 200~300명 정도가 파견됐다. 1637년부터 1894년까지 250여 년간 507회였으니 총 인원을 고려하면 그들의 영향력은 엄청났을 것이다. 압록강을 건너면서 박작성·구련성 등을...
유통개혁 부르짖은 박제가…"길이 없으니 물자교환 안돼" 2021-02-08 09:01:11
활약했던 실학파(혹은 북학파) 학자 중 한 명입니다. 박제가는 유통이 개선되어야 조선의 나랏살림이 그나마 나아진다고 봤습니다. 그가 정조에게 올린 ‘북학의(北學議)’를 보면, 그가 얼마나 조선의 유통과 물류의 개혁을 갈구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한 대목을 읽어볼까요? “영동 지방에는 꿀은 생산되나 소금이 없고,...
귀중한 기회 놓친 조선통신사의 행적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0-12-13 09:06:17
글을 함께 남겼다. 훗날 박지원 등 혁신적인 북학파들에게 영향 끼친 원중거도 화선(和船), 즉 일본배가 민첩하고, 첨저형으로 되었다며, 우리배의 약점을 보완하는 내용을 썼다. 그가 건조한 비선(飛船)은 한강에서 시험 운행을 할 때 역풍을 헤치고 나갔다. 이들은 귀국 후에 두 나라의 배를 절충해 만든 모형을 통제영에...
올 수능 가장 어려웠던 국어영역 지문은 `3D 합성 영상` 2020-12-03 16:01:55
북학파` 지문의 크리드 지수가 높게 나타났고, 문학 영역에서는 고전소설 `최고운전` 지문의 크리드 지수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대교 관계자는 "이번 분석 결과는 올해 수능 국어영역에 출제된 지문의 난이도만을 기준으로 분석된 자료이며, 문항 난이도에 따라 수험생들이 체감하는 난이도는 달라질 수 있다"며 "크리드를...
선진국인 청나라를 배우자는 조선의 '국부론'…북학파 지식인으로 기술혁신과 무역 강조했죠 2019-03-25 09:01:36
설움을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사실 북학파에 속한 학자들은 유난히 서자 출신이 많았는데 박제가를 제외하고도 유득공이나 이덕무가 그랬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당대 지식인들이 감히 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주장을 많이 했다. 북학이란 북쪽 나라의 학문, 즉 청나라를 배우자는 이야기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그 당시...
[연합이매진] '왕복 6천리' 燕行길 2018-08-08 08:01:03
한 구절이다. 조선 후기 북학파 영수였던 연암의 베이징(옛 이름 燕京) 방문, 다시 말해 연행(燕行) 길은 탄식과 통곡으로 시작됐다. 연암은 44세 때인 1780년 6월 24일(음력) 외교사절단으로 청나라에 가는 팔촌 형 박명원을 따라 6개월(여행 3개월, 체류 3개월)간 연경을 왕복하는 6천 리 대장정에 나섰다. 서계...
[연합이매진] 추사 김정희 2018-02-13 08:01:01
대문에 붙였는데 북학파의 거두 박제가(朴齊家)가 이를 보고 추사의 아버지에게 "이 아이는 앞으로 학문과 예술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만하니 제가 가르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훗날 추사는 박제가의 가르침을 받았고, 결국 북학의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일곱 살 때는 번암 채제공(蔡濟恭)이 입춘첩을 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