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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한의 자충수, '두 국가론' 2024-10-08 17:35:02
동독 정치범을 대가를 지불하고 서독으로 이주시키는 프라이카우프 정책이다. 동독에 지불한 금액이 총 80억마르크(약 4조원)라고 한다. 둘째, 동·서독이 두 국가로 존재하다가 독일 통일을 완성했다는 것도 오해다. 1968년 동독은 ‘두 독일 국가의 정상 관계 수립과 통일 노력’을 규정하는 헌법 조항을 신설했으나 1974...
[르포] 33년전 구동독 슈타지 감옥서 생각하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 2023-08-18 06:01:00
통해 프라이카우프(정치범 석방거래) 요청을 해 9개월간 복역 끝에 서독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프라이카우프는 1963~1989년 서독과 동독 정치범 3만1천755명을 석방해 서독으로 이주하는 대가로 서독이 동독에 22억 마르크 상당의 현물을 지원하는 사례를 말한다. 헬게 하이데마이어 호헨쇤하우젠 기념관장은 "공산주의...
[독일통일 30년]③ 정범구 "서독도 갈등컸지만 실무적 논쟁…우린 감정적" 2020-10-02 08:49:01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프라이카우프가 당시 실시된 동독에 대한 인권실태조사와 맞물려 동독 내 인권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있다. 정치범이 서독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인권탄압을 자행했다가는 서독의 인권기록소에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권탄압의 억제 효과가 있었다는 것...
[독일통일 30년]① '서서갈등' 관리 능력, 통일후 사회통합 원동력 2020-09-30 07:19:02
대가를 지급하고 동독 반체제 인사들을 데려온 '프라이카우프'(Freikauf)다. 기존에 한국에서는 서독 내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 없이 이어져 왔고, 언론이 정부 요청으로 보도 유예를 했다는 게 통설이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추진 과정에서 일찌감치 보도가 이뤄졌고 총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일...
[시론] 남북관계, 독일식 원칙을 세워야 한다 2020-05-13 18:06:12
공약인 ‘한반도 프라이카우프’(독일어로 ‘자유를 산다’는 뜻) 정책을 스스로 부정한 셈이다. 셋째, 실천하기 쉬운 교류부터 진전시켜 동질성을 회복하되, 북한 비핵화 협상의 유일한 지렛대인 대북제재의 틀은 유지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보건 협력, 이산가족 상봉, 개별 관광,...
[서독의 기억](22)"청년 극우서도 참여 에너지 찾아야"…옛동독 저항세력 시선 2019-11-07 07:05:00
프라이카우프로는 아니지만, 정치범 성격으로 서독으로 추방된 것으로 알고 있다. 결과적으론 서독이 프라이카우프로 동독에 경제적 지원을 한 셈인데, 이를 통해 서독이 이익을 얻고 동독 사회가 변화한 것이 있는가. ▲ 서독 입장에서 프라이카우프는 딜레마 상황에서 출발한 정책이다. 한편으론 동독의 인권개선, 다른...
[서독의 기억](20) '웬 교류·통일?'…허물어지지않는 '마음의 장벽'에 묻기 2019-11-05 06:45:00
반체제 인사를 대가를 치르고 서독으로 데려오는 '프라이카우프'(Freikauf) 정책은 인권개선과 동독 체제 안정화 기여 사이의 '딜레마'를 안고 시작했다. 특히 프라이카우프는 서독에서 공론화가 안 됐다며 이전에 국내에 전해진 것과 달리, 미디어를 통한 공론화와 정치권의 논쟁을 거쳐 자리를 잡았다는...
[서독의 기억](16) 인권위한 '인간매매' 27년…극우 부상에 기억소환 2019-10-27 09:03:05
기억' 취재 과정에서 조사한 결과, 프라이카우프의 진행 과정에서 여야 간에 갈등의 골이 있었고, 공론화 과정을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1972년에는 시청률이 58%에 달하는 TV 총선 토론에서 도마 위에 오른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언론에서도 프라이카우프 초창기부터 보도가 꾸준히 이뤄졌다. 서독 시민이...
서독의 수십조원 동독 '물대기'…동독체제 유지·통일 기반마련 2018-11-18 07:07:00
서독이 대가를 지급하고 데려오는 것은 프라이카우프로 불렸다. 이에 들어간 비용만 34억4천만 마르크에 달했다. 양측 정부 간 직거래가 아니라 서독의 교회가 동독에 물품을 공급했다. 이 역시 정치권 내부에선 동독의 체제를 유지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프라이카우프를 실시하는 데 영향을 줄...
[평양공동선언] 독일 통일의 '아우토반'된 동서독 평화구축·교류확대 2018-09-19 21:35:54
가능했다. 정치범 석방은 뒷거래(이른바 프라이카우프)로 이뤄졌다. 서독은 1962년부터 베를린 장벽 붕괴 전까지 27년간 34억6천400만 마르크를 동독에 지불하고 정치범 34만여 명과 가족 25만여 명을 데려왔다. 정치범 한 명당 10만 마르크를 지불한 셈이다. 동독은 1980년대 후반 소련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주민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