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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수로부인… <삼국유사> 여성들 한곳서 만난다 2023-07-25 09:25:43
일연이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의 설화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및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등록돼있다. 전시의 주제는 삼국시대 고전 문학에 등장하는 '여신' '여왕과 왕후' '신비로운 여인' 등 다양한 여성이다. 1부에선 고구려 주몽의 어머니 '유화',...
'근로자'는 일제가 만든 나쁜 말?…조선왕조실록에도 있었다 2023-05-01 09:00:03
올라가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도 후삼국의 견훤과 관련된 일화에서 등장한다. 문맥상 "애써 일한다" "부지런히 힘쓴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반면 노동(勞動)이라는 단어 자체는 27번 쓰인데 그쳤다. 국권 피탈 훨씬 전인 1800년대 후반 조선의 교과서 '국민소학독본' 에서도 '근로'라는 단어가...
[다산 칼럼] '너그럽고 넉넉한 문명국' 이끌어 주기를 2022-03-13 16:59:02
낮추는 ‘중폐비사(重弊卑辭)’ 외교로 후삼국을 통일했다. 반면교사는 조선 말기 세도정치다. 소수의 척신이 권력을 독점·세습하고, 대간(臺諫)의 감찰·탄핵 기능이 퇴색하자 부패가 만연해 끝내 국권마저 잃었다. 경제와 복지 등 민생문제도 화급하다. 특히 개발시대 ‘큰 정부’ 유산에 이념 지상의 교조주의까지 가...
[테샛 공부합시다] 개방을 통해 나라는 경제적 부를 축적하죠 2022-02-07 10:00:31
해양세력을 바탕으로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 통일도 이룰 수 있었죠. 이후 고려는 개경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벽란도’라는 무역항을 통해 다양한 나라와 교역을 했습니다. 송나라부터 요·금·원나라, 왜국 그리고 저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고려에 들어오면서 개경과 벽란도 주변은 상업 활동이 활발했죠. 고려는...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요·송 갈등 속…줄다리기 외교·무역으로 성장 2021-11-29 10:00:17
지어 단계별로 살펴보자. 후삼국 시대에 중국 지역은 남과 북에서 15개의 나라가 70여 년 동안 명멸하는 5대 10국이라는 대분열 시대(907~979년)였다. 만약 당나라가 존속했다면 통일신라의 내정에 간섭했고, 고려는 통일이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천운인지, 이후에도 중국은 40년 동안 분열이 계속됐다. 만주에서는...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해상권 잡고 후삼국 통일전쟁 승리한 왕건, 끝까지 저항한 적 품은 포용의 리더십 빛나 2021-11-15 09:01:49
어떻게 역사에 등장했을까. 후삼국 시대의 도래와 동아시아의 대분열통일 신라는 9세기 후반에 이르러 권력쟁탈전과 경제 실패, 지방 호족들의 반란 등으로 이미 붕괴 중이었다. 마침내 900년에 경상도 산골 출신인 견훤이 후백제를 선포했고, 901년에는 신라의 왕족이며 미륵불이라고 자처한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웠다....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신라 분열 속 후백제와 고려의 '바다 쟁탈전'…견훤의 후백제는 국제관계에 해양능력 활용 2021-11-08 09:00:26
900년에 완산주(지금의 전주)에 도읍을 정한 뒤 후삼국 통일전쟁에 뛰어들었다. 후백제는 927년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침공해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세웠으며, 고려와 벌인 전투에서 승리하며 세력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930년 고려와의 고창(안동) 전투에서 대패했다. 또 934년에는 웅진(공주) 이북의 30여 성을...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군사력·상업에 문화·종교까지 결합한…청해진 바다 영토 확대하며 신라 사회개혁 의식 높여 2021-09-27 17:00:05
일종의 자치권과 상업활동, 세금 혜택 등이 보장된 느슨한 경제특구에 해당할 수 있다. 장보고는 천민도 왕족이 될 수 있다는 사회 개혁의식을 확산시켰다. 그의 사후 백성들이 주체가 된 후삼국 시대가 도래했고, 경기만의 해양세력인 왕건은 통일을 이룩했다. 경제무역의 시대, 해양의 시대, 문화의 시대, 네트워크의...
여름이 보내는 連歌(연가) 2021-07-15 17:26:20
후삼국통일 후 주민들이 보강해 저수지로 활용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합덕제는 조선시대에도 꽤 유명한 저수지였다. 조선왕조실록에 합덕제를 중수하거나 보수했다는 기록이 곳곳에 존재한다. 합덕제는 예부터 연꽃이 많아 ‘연호방죽’으로 불렸다. 조선 영·정조 때 세워진 합덕제중수비에는 합덕제가 ‘연제’로...
"애국가 `무궁화 삼천리` 빼야"...법대교수 주장 파장 2021-05-12 08:55:53
`삼천리` 또한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936년부터 일본의 강압에 밀려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1876년 이전까지 한반도 영토 범위로 쓰인 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다만 고려와 조선 천 년 동안 최악의 유배 형벌용어로 쓰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20세기 초까지 만주가 한국땅이라는 인식(조선왕조실록...